朴 전대통령, 권력 사유화로 국정농단
국민들은 주권자 권리 행사하며 '파면'
기소도 안됐는데 '사면공방'은 부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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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국민에 의한 대통령 파면은 헌정 사상 초유다. 임기 중 구속도 최초다. 법리적 최종 판단은 법원의 몫이겠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력 농단의 본질이 그만큼 참담하다는 방증이다. 대선 국면에서 대통령 탄핵에 불복하는 세력이 결집하여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있으나 대선 지형을 바꾸기는 불가능하다. 우선 정당성을 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거스를 수 없다.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박근혜의 탄핵과 구속을 지지한 마당에 아직도 탄핵 무효를 외치는 무리의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 행위를 언급할 가치조차 있을지 모르겠다. 이와는 별개로 박 전 대통령의 사면 관련 얘기가 정치권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은 아직도 한국 민주주의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적인 소유물로 인식했고 사유화된 권력으로 국정을 자의적으로 재단했다. 이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유착으로 가능했으며 산업화를 앞세운 경제제일주의는 부패고리를 구조화시켰다. 사회 모든 영역에서 비정상이 관행화되었다. 민심은 국정을 사유화한 대통령과 이에 편승한 무리들의 사법적 단죄를 요구했다. 국회와 헌법재판소, 법원 등 제도권은 주권자의 의지에 조응했다. 주권자의 의지가 제도권의 화답으로 연결된 법치주의 및 국민주권주의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벌써 사면 타령이다. 아직 정식 기소도 되지 않은 국정농단에 대해 벌써 사면 논란이 제기되는 자체가 향후 청산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의 형을 받았으나 결국 사면됐다. 1995년말 구속되어 1년 반 만에 대법원 최종심이 나왔고, 그 뒤 8개월 만에 사면됐다. 2년 남짓 감옥에서 보냈다. 사면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다. 정권을 인수할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대화합을 건의해 결정된 사항이다.

이승만 정권과 친일 관료 지주와의 결탁은 일제 청산을 무위로 돌렸다. 4·19혁명 이후는 물론 1987년의 절차적 민주주의 확립은 사회경제적 구조의 혁파에는 무관심했다. 최소한의 민주주의의 확립은 기득권과의 타협으로 실질적 민주주의로 이어지지 않았다. 적폐청산은 과거요, 통합과 연대는 미래라는 설익은 이분법이 과거 청산을 무위로 돌리는 우를 범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의 사면이 사회적 통합으로 포장되는 굴곡진 역사가 또 되풀이될지에 대한 상식적 우려는 그래서 기우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가권력을 자신의 사유물로 인식했고, 권위주의 시대의 독선으로 국정을 농단했다. 주권자인 국민은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여 대통령직에서 파면했다. 그런데 아직 기소도 되지 않은 피의자에 대해 정치권에서 사면 논쟁이 벌어지는 현실이 개혁의 고비마다 기회를 날려버렸던 과거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산업화 시대의 압축성장이 초래한 정경유착의 고리와 부패구조를 척결하지 못하면 국기문란과 국정농단은 잠복기를 거쳐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 국민은 그래서 지난 해 가을부터 그 혹한을 견디고 새 봄이 올 때까지 구조적 혁파와 제도적 개혁을 목이 터지게 광장에서 외쳤던 것이다. 이것이 시대정신이다. 그런데 사법 처리는 커녕 재판도 시작하지 않은 시점에서 내용이 어찌됐든 대선 주자로부터의 사면 논쟁은 부적절하다.

대선은 항상 시대정신에 충실했다. 지난 18대 대선은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시대정신을 선점한 박근혜 후보가 승리한 것이며, 17대 대선은 경제살리기라는 대세가 이명박 후보의 승리를 견인했다. 물론 이들의 임기 후의 평가는 새삼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선거 구도가 선거 승패를 가를 것 같은 이번 대선도 역시 국민이 요구하는 민심의 소재를 아는 자가 승리할 것이다. 어떠한 선거전략과 합종연횡 등의 선거공학도 민심을 거스르지는 못한다. 선거가 갖는 집단지성의 힘이다.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이 정치공학으로 이용돼서는 안되는 이유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