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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싸우는 골의 백로, 여우 굴의 토끼 같던 안철수였다. 말도 조곤조곤 조심스럽고 고상한 남산골 선비 같았고 포은 정몽주 모친의 시조처럼 '청강(淸江)에 기껏 씻은' 귀하신 몸 기풍이었다. 2011년 박원순에게 서울시장을, 그 다음해 문재인에게 대선 후보를 양보하던 때만 해도 그랬다. 그런 그가 작년부터 확 달라졌다. 몸짓 태깔은 물론 말투와 스피치부터 바뀌었다. 목소리 톤이 올라갔고 강세 억양이 자유자재 아닌가. 뭔가 확 파겁(破怯)한 듯한 기백의 사나이가 된 거다. 이번 국민의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과 후보로 확정된 그는 더욱 무섭게 변했다. 변모 변성(變聲)이 과시 파격적이다. 안철수→강(强,剛)철수→독(毒)철수가 됐다고 했듯이 독기 뿜는 대 웅변가로 표변했고 '(문재인에게 양보하던) 5년 전보다 백만 배 천만 배 강해졌다'고 자처하듯이 포효하는 사자후가 놀랍다.

무섭도록 인간 진화를 한 것인가, 아니면 냅다 속물 정치가로 타락한 것인가. 아무튼 안철수 돌풍은 가히 토네이도(tornado)급이다. 저 멀리 지평선으로부터 시커먼 버섯구름을 비틀어 뿜어 올리며 다가오는 무시무시한 회오리바람이라니! 그런 바람이 우리말로 '용오름'이지만 일본에선 '다쓰마키(龍卷)', 중국에선 '룽쥐엔(龍卷)' 또는 '룽페이(龍飛)'다. 이무기가 용이 돼 하늘로 오르는, 곧 제위(帝位)에 오를 모습 아닌가. 우화등선(羽化登仙)-몸에 날개가 돋쳐 승천하는 신선이 아니라 용(제왕)이 되는 거다. 이 번엔 끝까지 철수 안한 안철수가 정말 그리 될 것인지 궁금하다. 그가 첨부터 '문재인과 안철수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천명한 절규도 맞을 듯싶다. '더 미운 후보냐 덜 미운 후보냐'의 별난 선택지도 이채롭고….

그런데 문재인도 안철수도 당 후보 확정 연설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이 '국민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 말만은 좀 그렇다. 너무 잘난 대통령이든 그렇지 못한 대통령이든 국민이 뽑지 않은 '비(非)국민 대통령'이라도 있었다는 소린가. 국민 타자, 국민 배우, 국민 가수, 국민 오빠와 여동생에다가 국민 대통령? '국민'은 best만의 수식어가 아니다. 도둑과 사기꾼 등 'worst 인간'도 국민 도둑과 사기꾼 아닌가.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