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사진
김유성 죽전고 교장·용인시 교원총연합회장
삶과 죽음의 차이는 억겁의 간격으로 멀게 느껴지지만, 실제 일이 닥치고 보면 이승과 저승, 생과 사의 구분은 마치 숨 한번 고르는 차이인 것 같다. 더욱이 가깝던 사람의 죽음을 보게 되면 마치 한바탕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요즘처럼 의학이 발달하고 건강을 챙기는 환경이 조성되어 예전보다 평균 수명이 획기적으로 길어진 때에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곤 한다.

얼마 전 매제가 이승을 떠났다. 건강을 자신할 만큼 누구보다 강건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기치 않게 불치의 병이 들어 짧은 기간 투병을 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와 연배가 비슷해 오랫동안 집안의 대소사에 힘이 되어 주었던 단 하나뿐인 매제였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 가슴 한 편에 남아 있는데, 예기치 않게 닥친 매제의 죽음은 내게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과 슬픔으로 다가왔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매제의 예고된 죽음의 모습을 보고, 그리고 얼마 후 덜렁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는 매제의 빈소에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집안의 장남이지만 그동안 공직에 매여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하고 도회지에 떨어져 살았다. 매제는 이러한 나의 힘든 틈새를 메워주어 퍽 위안이 되곤 하였다. 집안에 일이 있을 땐 같이할 수 있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농사철엔 한달음에 시골집으로 달려와 부모님 일손을 돕기도 하였고, 아버지 생전엔 장인·장모님까지 모시고 종종 여행을 한 자상한 사람이었다.

예기치 않은 매제의 죽음을 보면서 평소 건강은 자신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말이 실감난다.

아직도 매제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또한 상실감으로 가슴이 아프고 허탈하다. 하물며 여동생의 경우 이를 더 헤아려 무엇 할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이 남은 여동생이 걱정되어 또한 더욱 마음이 아리다.

옛 신라 시대 월명사가 누이의 죽음을 보고 애틋한 마음을 나타냈던 '제망매가(祭亡妹歌)'의 심정이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생사(生死) 길은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삼국유사).

젊어서 죽은 누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나타내면서 인생의 무상함과 슬픔을 극복하고 승화시키고자 한 월명사의 마음에 더욱 공감이 든다.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짧게 생을 마감한 매제가 안타깝기만 하다. 무릇 생명이 있는 존재는 모두 삶이 한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애써 위안을 해보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주는 가슴 아림은 크기만 하다. 나보다 짧게 살다간 매제가 부디 저승에서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복된 삶으로 극락왕생하였으면 한다. 먼저 간 매제의 명복을 빈다.

/김유성 죽전고 교장·용인시 교원총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