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대리전쟁 위협시간 아니라
우리 삶·평화 우리가 지켜내는 시간
대선후보 보수·진보 고르는 때 아닌
스스로 삶 결정해야 할 중요한 시간
독점 원하는 자들에게 현혹되어
미래와 삶을 포기해선 절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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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탄핵 이후 우리 사회는 빠르게 대통령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탄핵과 관련된 사안들은 잊혀지고 언론은 연일 차기 대통령과 관련된 기사를 쏟아내기 바쁘다. 지난 대통령과 관련된 비리와 불법에 온갖 목청을 높이던 그 많던 정치 평론가들도 이제는 대선과 관련된 판세 읽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너무도 익숙해서 진부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지난 몇 달 동안 무엇을 보았고, 무엇에 저항하며 외쳤던가. 과연 지난 겨울 수많은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 모았던 그 간절함은 얼마나 이뤄졌는가.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했으며, 우리 삶은 나아지긴 한 것일까. 그 불의와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던 추악함은 사라졌는가. 전혀 흔들릴 것 같지 않던 권력의 지층에 작은 흠이 갔다고 해서 광장의 외침이 온전한 정치적 목소리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지금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그들 가운데 어느 누가 차기를 맡으면 이 외침은 되풀이되지 않을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은 나만의 불길한 예측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지금 우리 사회를 둘러싼 내적, 외적 상황은 그 어느 때에 비교해서도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사드배치를 둘러싼 불협화음은 미국과 중국의 거친 요구에 따라 언제 폭발할지도 모른다. 북핵의 위협과 미중 갈등의 폭발적 위력은 눈앞에 닥쳐왔지만, 그들의 정상회담 어디에도 이 땅의 평화를 고려했다는 흔적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국 전투기 구입에 12조원을 쓰고, 사드 배치 논란을 벌이지만 정작 필요한 평화에 대한 생각은 입도 떼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를 둘러싸고 사익을 추구하던 추악한 세력들은 얼굴을 바꾼 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이런 야합을 알면서도 침묵했던 언론은 과연 얼마나 그런 굴레에서 벗어났는가. 대선 보도에 열중하는 거기에는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기업과 재벌은 경제만능의 사고로 이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경제와 결탁한 정치가 반성의 소리를 낸 적이 있는가. 이 사회의 정의와 최소한의 권리를 지켜야할 법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올바르게 이끌어가야 할 교육이 제대로 반성하고 변한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교육에 무지한 교육부의 맹목적 정책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찬 국정교과서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 이 시간 시민과 시민의 삶이, 올바름과 공정함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그 자리에 청년 실업과 노인 문제가, 비정규직의 절규가, 자영업자의 고통과 노동의 절규가 여전하다. 불의와 불공정과 사익을 위한 부정이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는 자리에 다만 그들만의 권력 놀음이 흘러넘치고 있다. 그 권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국민의 당 대통령 선거 후보가 확정된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안철수의 시간이 오니 문재인의 시간이 가고 있다" 아니다. 지금은 다만 늑대의 시간일 뿐이다.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은 시간, 여명과 어두움이 섞여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시간이 지금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 시간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시간은 대통령의 것이 아닌 시민의 시간이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 어두움 속에서 야합하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관심과 삶을 위한 공동체의 시간이다. 미국 중국이 이 땅에서 대리전쟁을 위협하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 삶과 평화는 우리가 지켜내는 시간이어야 한다. 핵과 전쟁의 위협을 몰아내는 시간이지 사드에 찬성하는지를 묻는 시간이 아니다. 경제가 아니라 좋은 삶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시간이다.

지금은 보수와 진보를 선택하는 시간이 아니라 생명과 삶이 중심에 놓이는 시간이어야 한다. 시민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권을 대표자에게 재현시키는 시간이다. 시민의 권력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현혹되어 우리 삶의 시간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우리 삶과 미래를 위한 시간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금 을의 사회로, 마침내 노예의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지금은 늑대의 시간이다. 그 시간을 결정할 시민의 시간, 이를 위한 계몽의 시간이 지금이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