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좋은 이름을 갖기 원한다. 예전엔 항렬 등을 따져 한자에 밝은 집안 어른들이 신생아의 이름을 짓곤 했지만, 요즘은 종교에 상관없이 작명소를 찾는 부모들도 많아졌고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거나 부모들이 직접 성명학을 공부해 짓는 경우도 있다. 성명학 이론은 학파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한자와 한글의 오행(五行)을 따져 짓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일단 신생아의 사주를 오행으로 분석한 후 넘치거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방법이다. 가령 어떤 아이가 한 여름에 태어나 화(火) 기운이 넘친다면 열기를 식혀줄 수(水) 기운이나 열기를 빼주는 토(土) 기운이 담긴 글자를 이름으로 쓰는 것이다. 반대로 목(木) 기운이나 금(金) 기운이 부족하다면 오행상 그것이 포함된 글자를 넣어서 중화(中和)를 맞춰주는 것이 성명학의 핵심이다.
하지만 시중에 돌아다니는 작명책은 한글의 오행이 엉터리로 표기돼 있는 것이 허다하다. 현재 역술계에서 유통되는 상당수 작명책에는 'ㄱ(木)·ㄴ(火)·ㅇ(土)·ㅅ(金)·ㅁ(水)'으로 표기가 돼 있다. 이는 신경준이 1750년(영조26)에 작성한 '훈민정음운해(訓民正音韻解)'라는 책에 그렇게 표기돼 있고, 1938년 조선어학회에서 이를 단행본으로 만들어 공개하면서 이런 이론이 굳어지게 됐다. 그런데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본)이 안동에서 발견됐는데 여기에는 'ㄱ(木)·ㄴ(火)·ㅇ(水)·ㅅ(金)·ㅁ(土)'로 돼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ㅇ'과 'ㅁ'의 오행이 뒤바뀐 것이다. 한글을 직접 만든 사람들이 한글의 오행은 '이것이다' 라고 정의를 해놨는데, 신경준이 임의로 바꾼 것이다. 문제는 해례본이 발견됐으면 뒤늦게라도 작명책을 수정해야 하는데, 이를 고치지 않은 책이 엄청나게 유통됐고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성명학 공부에 몰두, 다른 사람 이름을 잘못 지어주는 역술인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렇듯 한글의 창제원리를 설명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우리의 생활과도 너무나 밀접한 소중한 문화 유산이다. 그런데 2008년 해례본(상주본)을 우연히 손에 넣은 한 사람이 그 가치를 '1조원'이라고 주장하며 꼭꼭 숨겨 놓고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실물을 공개하겠다"고 국민들을 협박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김선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