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저지른 자 그 힘 두려워하며
그것 해체하려고 온갖 수단 강구
오늘날 정당한 증오 파편화 하고
무력화 시키는 것은 웃음과 기쁨
증오 못해 용서·관용 베푸는 동안
부활해야 할 생명 돌아오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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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봄은 잔인한 계절이다. 모순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메마른 땅을 적시는 봄비는 농부에겐 반갑지만,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원망스럽다. 꽃들은 피어나고 나무는 춤을 추지만 오늘도 광화문 광장 광고탑 위에는 여섯 명의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치며 곡기를 끊고 서있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신의 시간 속에서 인간의 고통은 피어나는 꽃과도 싸워야 한다.

내가 사는 강원도 산골의 접경지역도 꽃무덤에 뒤덮인 골짜기마다 숨겨진 죽음들이 황홀경에 감춰져 있다. 향락의 시간이 된 봄은 죽음 앞에 선 인간을 외면하며 아름다움은 망각의 힘도 동시에 발휘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온 힘을 다해 기억의 투쟁을 해야 한다. 4·3, 4·16, 5·18… 아직도 끝나지 않은 6월의 전쟁까지, 숨 막히게 돌아오는 이 땅의 봄은 그렇게 화해할 수 없는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역사가 뒤엉켜 있다. 생명이 부활하는 봄이 죽음을 뒤덮으며 올 때 나는 휴머니즘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종종 휴머니스트들은 치유와 위로를 통해 고통을 중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망각은 인간을 고통에서 구원하지 못한다.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오직 그 고통의 사회적 원인과 의미가 드러나고 역사화될 때에만 가능하다. 휴머니즘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싸우는 곳에서 시작된다.

중학교 때 도시에서 온 영어 선생님은 영어에는 새가 운다는 표현이 없다고 했다. "버드(bird)는 크라잉(crying)하지 않아. '싱어송(sing a song)'이라고." 그랬던 것 같다. "얼마나 좋아? 응? 좀 밝게 밝게 살자. 응!" 하지만 나는 늘 '새가 운다'고 말했던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 같아 싫었고, '밝게 살라'는 말이 거북했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들었던 새의 울음은 아름답고 처연했다. 새는 곳곳에서 들은 슬픈 사연들을 전하고 있었다. 새의 울음은 슬픈 노래이기도 했다. 노래가 기억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소리는 어떤 이들에겐 불온한 소리였지만 어떤 이들에겐 '같은 마음'을 확인시켜주는 단결의 노래였다. 그건 민중이 증오를 사회화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증오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를 겪고 나면 인간도 사회도 모두 황폐해지는 법이다. 증오가 사적인 상태로 남게 되면 복수의 악순환을 낳거나 집단적 혐오로 빠져든다. 그것을 중단할 수 있는 방법은 공동체에 대한 죄과는 반드시 법에 의해 응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개인적 증오는 파편화된 에너지로 잠재되어 언제 터질지 모를 위험한 뇌관으로 남지만, 사회화된 증오는 개인적 증오를 공적인 힘으로 전환시키고 공공을 위한 정의를 수립한다. 그러니 필요한 건 증오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증오하는 힘이다.

불의한 지배자는 그 힘을 두려워하며 그것을 해체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강구한다. 오늘날 정당한 증오의 힘을 파편화하고 무력화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웃음과 기쁨이다. 독재정권은 총칼로 지배했지만 자본은 오락과 쾌락으로 지배한다. 시장의 용어들은 '과도 긍정성'이 특징이다. 소비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광고에는 절망이 없고 우울이 없다. 인간도 유쾌한 사람이어야 잘 팔린다. 오늘날엔 누구나 '노래하는 새'가 될 것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증오하는 힘을 잃어버린 시대에는 용서받지 못할 일이 용서받고 인간성을 지킨 사람들의 인간성이 다시 짓밟히게 된다.

얼마 전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전(前)대통령 전두환은 회고록을 출판했다. 5월의 봄은 '폭동'이 되어 돌아왔다. 그 정권에서 안기부장이었던 장세동은 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광주학살의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아직 살아있는데. 탄핵당한 박근혜 정권에서 일어난 국가정보원 간첩조작사건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남재준은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있다. 이 역사의 반복이 어떤 비극으로 재현될지는 알 수 없다. 마땅히 증오해야할 것을 증오하지 못하고 용서와 관용이 남용되는 동안, 부활해야할 생명들은 돌아오지 못한다. 봄 들녘엔 죽음의 냄새가 가득하다. 5월에는 장미도 피지 말았으면 좋겠다. 새가 운다.

/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