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혁신도시지구 등
대법원 "부과대상에서 제외"
LH에 반환해야할 비용 규모
이자포함 경기도만 5조 넘어
학교건립 차질 건설사 불똥
민원·소송 추진 '갈등 확산'
道, 판결 직후 공동대응 합의
시·군 입장 국무조정실 전달
관련 개정안 신속 통과 성과
道교육청, LH요구 적극 검토
LH의 해결의지 협상안 도출
경기도 소속 공무원 A씨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방재정 파탄을 불러올 '학교용지부담금 반환 사태'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5개월 동안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쓸려 내려갔다.
지난해 11월 말, 대법원은 부천시 등 지자체가 LH에서 걷은 학교용지부담금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논리는 간단했다. 학교용지법 상 학교용지부담금 부과대상에 보금자리주택지구·혁신도시지구·신행정수도 등 특별법에 따른 개발사업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경기도 내 지자체는 원금만 1조6천억원, 이자포함 5조원 이상을 반환해야 했다. 인천시, 세종시, 대전시, 경상북도도 같은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전국적인 사안으로 번졌다. 학교용지를 무상으로 공급받은 교육청으로도 피해가 확산됐다. 지방재정 파탄은 불가피해 보였다. '학교용지부담금 반환 사태'가 시작됐다.
행정부가 오로지 법령을 근거로 판단하는 사법부에 철퇴를 맞은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어떠한 정치 권력도 뒤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법제처의 해석만 의존한 채 법령 자체를 바꾸지 않은 정부의 안일함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앞이 깜깜한 상황에서 A씨를 비롯한 경기도 소속 공무원들은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학교용지법 개정을 추진했다. 사태 해결을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행정자치부, 국토교통부, 교육부 등 중앙부처에 협조를 요청했다. 사태가 확산되며 학교 건립이 중단되자 민원도 빗발쳤다.
건설업계, 피해지역 주민 등의 민원에 응대를 하느라 매일같이 진땀을 뺐다.
마땅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고 앞이 깜깜했던 때 구원투수가 등판했다. 국무조정실이었다.
# 국무조정실 중재로 처음으로 마주 앉은 LH와 교육부, 협상안 도출해내다.
대법원의 판결로 승기를 잡은 LH는 곧바로 몸을 사렸다. 경기도, 도교육청, 교육부 등의 협상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LH를 지도·감독하는 국토부의 문의에 의견을 전달할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건설업계는 난리가 났다. 신설학교를 설립하려면 교육청과 협의가 필요한데 교육청이 협의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맞대응한 것이다.
그 결과 해당 지역의 건설업체들은 적법하게 택지를 매입하고 사업계획승인을 받고도 분양을 하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사업지연에 따른 지체상금·이자 등 막대한 비용이 발생해 일부 건설사는 존폐 위기까지 겪었다.
또 해당 지역 입주예정자들은 학교가 들어서지 않는다는 소식에 강력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학교 유무와 거리는 주택구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양 향동지구, 지축지구, 하남 감일지구 등 피해 면적이 늘어났다.
이에 건설업계에서는 정부와 LH 등을 상대로 민원폭탄을 투하했고 피해보상 소송까지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건설업계는 지난해 잇따른 정부의 부동산규제 정책 발표(8월25일, 11월3일, 11월24일)와 미국발 금리인상 및 국내정세 불안 등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의 확대로 어려움이 가속되는 상황에 공공기관 간 갈등으로 유탄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민간에까지 피해가 확산되자 기관간 조정을 통해 공공기관 간 갈등을 해결하는 국무조정실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절정을 향해 치닫는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사실상 해결책이 없다고 판단한 정부부처와 대부분의 지자체와는 달리, 사건의 발단이 된 경기도로부터 의견을 청취한 국무조정실은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상황이라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LH가 소송을 취하하면 지방재정 파탄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수조원이 들어오는 LH 입장에서 아무런 대가없이 소송을 취하할 리 만무했다. LH가 그동안 감당해 온 불합리한 점들을 해소해줘야 했다. 협상만 잘되면 LH도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판단한 국무조정실은 국토교통부, 교육부, 도교육청 그리고 LH를 불러 모았다.
지난 3월 초 '학교용지부담금 반환사태' 해결을 위한 협의가 시작됐다. 국무조정실 주재로 열린 협의에서 국토부-LH, 교육부-도교육청 등 양 패로 나뉜 이들은 그동안 쌓여있던 불만사항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이들은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모였고 수시로 전화·이메일을 통해 의견을 조율했다.
양측의 대화가 많아지자 국무조정실도 소송취하를 전제로 불합리한 규제를 해소하는 내용의 협약식을 체결키로 결정해 각 기관에 통보하는 등 해결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비쳤다.
두 달 가까이 진행된 협의 끝에 지난 10일 각 기관들은 협약 체결을 큰 틀에서 합의했다. LH는 불합리한 규제 3가지를 개선하는 조건으로 학교용지와 관련된 모든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 국무조정실 등은 현재 협약문구를 조정한 뒤 협약식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5개월간 지자체의 목을 조여 온 '학교용지부담금 반환 사태'가 일단락 된 셈이다. 지방재정 파탄 위기를 지켜낸 것이다.
#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 지자체의 노력으로 초유의 사태 막아내다.
'학교용지부담금 반환 사태'가 벌어진 뒤 직격탄을 맞은 지방재정과 건설업계는 연일 울상이었다. 경기도는 시군과 도교육청을 포함해 원금 1조6천억원, 이자포함 5조원 상당을 당장 올해부터 LH에 지급해야 했다. 올해 기준 경기도 예산(19조5천941억원)의 25%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또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신도시 내 학교용지를 확보할 길이 없어지면서 새로운 학교를 지을 수 없게 되자 주택공급을 통해 들어오는 세수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흥 은계지구 등 도내 신도시 1만6천여가구의 분양이 전면 중단되면서 건설업계는 경기도 등을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재정 파탄은 불 보듯 뻔했다. 세수 흑자전환으로 교부단체로 전환된 첫 해, 큰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경기도는 판결이 나온 직후 관련 사항을 도교육청에 알리고 곧바로 교육협력 실무회의를 통해 공동대응하기로 합의했다. 또 행자부와 교육부, 국토부, 기재부 등 정부부처에 이번 사태로 인한 문제점을 설명하고 해결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중앙·지방 간 정책협의회의 안건으로 올렸고 국회에는 법령개정을 건의했다. 관련된 시군의 입장을 모아 국무조정실에 전달하는 등 가교역할도 해냈다.
그 결과 지난달 2일 학교용지법 개정안이 발의된 지 한 달만에 본회의를 통과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또 사태해결의 키를 쥔 국무조정실에 지자체의 정확한 입장을 전달하면서 협상안 도출을 이끌어 냈다.
도교육청도 수차례 진행된 협상과정에서 LH의 요구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추가될 수 있는 문제를 막아냈다. 경기도와 도교육청, '연정 파트너'가 함께 이끌어낸 성과였다.
건설업계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앞서 대한주택건설협회와 한국주택협회는 국무조정실, 국토부, 교육부, 경기도 등에 탄원서를 제출하며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해왔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처음에는 지자체에서 시작된 단순한 문제였을지 모르지만, 파급효과가 매우 커 사태해결을 위해서는 각 기관의 대응이 매우 중요했다. 모든 기관에서 적극적인 대응으로 임해 준 덕분에 해결점을 도출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국회 상임위(국토위, 교문위)에서도 협약에 참여할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협약이행률이 높아지고 정당성도 확보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 24일 패소판결을 접했을 때는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했는데 모두가 해결돼 천만다행"이라며 "모든 관계부처에 감사하지만 특히 소송을 이기고도 해결의지를 보여준 LH가 큰 역할을 해줬다"고 말했다.
/전시언기자 cool@kyeongin.com
■학교용지부담금
대규모 택지개발 시 인구가 급증하면서 필요한 학교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지자체와 교육청은 '학교용지 확보에 관한 특례법'에 의거해 개발업체로부터 학교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받거나 부지 매입비용을 징수한다. 이를 학교용지부담금이라고 하는데, 개발 이익 일부를 공익적 사업인 학교 부지를 위해 환원한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