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인 하면 떠오르는 중국 문학작품이 루쉰(魯迅)의 소설 '阿Q正傳(아큐정전)'과 보양(柏楊)의 평전인 '추악한 중국인'이다. 전자는 중국 근대문학의 획기적인 작품으로 소설 제목부터 별나다. 언뜻 봐 알 수 없는 '阿Q'에다 점잖고 품격 높은 듯한 '正傳'이라는 말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주인공 阿Q는 너무나 못난 천덕꾸러기로 자신이 천대를 받는지조차 모르는 인간이다. 더구나 그 이름이 한 번도 문자화한 적도 없이 사람들이 '아퀘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아큐'가 됐다는 거다. 그런 아큐를 신해혁명과 5·4운동(1919) 세대인 루쉰(본명 周樹人:저우수런)이 단순한 웃음거리로만 독자에게 제시한 건 아니다. 그 아큐가 바로 중국인의 본태(本態)며 정체라고 묘사했다. 열강의 수탈 대상으로 속절없이 당하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는 무기력과 무능, 만연된 부패의 중국이 너무나 혐오스럽고 통탄스러웠던 거다.
그런 루쉰의 阿Q正傳 이후 가장 통렬한 중국 문화 비판서가 또한 대만 작가 보양의 '추악한 중국인'이다. 중국 허난(河南)성 출생으로 본명이 꿔띵성(郭定生)인 보양은 1949년 국민당과 함께 대만으로 건너갔다. 자립만보(自立晩報) 칼럼니스트이기도 했던 그는 중국 전통문화를 장독에 비유했다. 거기서 탈출을 못한 채 고루한 사고방식과 아집에 빠져 있다는 것이고 윤리의식이나 가치관도 없이 투쟁과 사기, 배신이나 일삼는 더럽고 무질서하고 시끄럽기만 한 인간들이라고 질타한 게 '추악한 중국인'이다. 2008년 89세로 타계한 그가 문제의 이 중국인 평전에서 강조한 유명한 말은 또 있다. '우리 중국인의 추악함을 우리 자신이 모른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중국인은 모두 훌륭한 용이지만 세 사람 이상만 모이면 돼지, 벌레가 된다'고 했다.
북한 핵실험을 5차까지 말리지 못하고(않고) 막지 못한(않은) 채 말리는 체, 막는 체만 해온 중국인은 음흉하다. 중국말로 '인두(陰毒)'고 음험흉악(陰險凶惡)한 거다. 찌르려는 창은 놔두고 막겠다는 방패(사드)만 나무라는 짓 또한 비열하다. 어제 모 신문 광고문은 '경제력은 G2, 행동은 G200'였다. 6차 핵실험을 막느냐가 '추악한 중국인' 여부의 시금석이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