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조때까지 관아위치
외적침입에 맞섰던 최전선
보호관리안돼 잡풀만 무성
"지자체 발굴 조사" 목소리
강화군 교동도 고구리에 위치한 고목근현 성(古木根縣 城·고구리 고읍성)이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외적의 침입에 맞섰던 전략적 요충지로서 역사가 있는 만큼 발굴조사와 지자체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5일 오전 11시께 찾은 강화군 교동면 '고목근현지'. 비지정 문화재인 이곳을 설명하기 위해 설치된 '고목근현지' 안내판에는 '고구려 때 설치한 이래 조선 인조 7년(1629년)까지 관아 건물이 있었던 곳'이라는 설명이 쓰여 있었다.
현(縣)이란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의 하나였다. 이런 역사적 가치가 무색하게 성(城)은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이곳을 둘러싼 성은 높이 5~6m, 둘레 1천여m가 남아 있었는데 사유지가 된 이곳에는 빈 병과 먹다 남은 옥수수 등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나무뿌리와 나뭇가지들은 불에 탔는지 검게 그을린 채 버려져 켜켜이 쌓여 있었다.
관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성 안쪽 대지에는 줄기가 꺾인 나무가 볼품없이 방치돼 있고, 개인이 심은 농작물과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학계에 따르면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한반도 남쪽으로 영토를 넓히면서 백제의 성을 함락시키고 이후 고목근현을 설치했는데, 그 위치를 현재 고구리 고읍성이라 불리는 이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교동도는 역사적으로 개성과 평양이 가까워 외적의 침입에 맞섰던 전략적 요충지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 말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오랜 시간 교동도의 중심지였던 고목근현지(통일신라 시대 '교동'으로 명칭 변경)에는 여전히 관아 터로 추정되는 흔적과 성 일부가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지만, 전반적인 문화재 발굴조사는커녕 관리도 없이 방치된 상황이다.
한기출 교동역사문화발전협의회장은 "고려 말 최영 장군은 '교동에 외적이 침입하니 방어할 수 있도록 주민들을 피난시키고 방어주둔 군사력을 둬야 한다'고 상소를 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침략이 많았다"며 "전략적·군사적 요충지이자 고려시대 수도를 지켰던 곳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높다"고 말했다.
고목근현지를 비롯해 교동도에 지정되지 않은 채 방치된 문화재가 산재한 만큼 이제라도 문화재 조사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황해섬네트워크 장정구 섬보전센터장은 "인천시가 섬 관광을 개발하면서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고 있지만, 강화 교동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고목근현 터는 방치되고 있다"며 "최소한 발굴, 학술조사를 통해 문화재를 관리하고 보존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