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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는 얼음판에서 스케이트를 신은 6명의 선수로 구성된 두 팀이 고무원판의 퍽을 스틱으로 쳐서 상대팀의 골에 넣는 경기다. 아일랜드의 헐링이나 스코틀랜드의 신티와 비슷한 밴디라는 빙상경기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이주민, 영국 군인들에 의해 캐나다로 전해져 아이스하키로 발전했다. 북미와 유럽에서 성행하며, 종주국 격인 캐나다와 미국, 러시아가 전통의 강호로 꼽힌다.

한국 아이스하키는 1928년 처음 일반에 선보였다. 일본 동경제국대학 팀이 만주를 다녀오는 길에 서울에 들러 시범경기를 했는데, 이를 계기로 철도팀과 경성제국대학팀이 창설됐다. 그 후 1930년 1월 조선체육회 주최로 열린 제6회 전조선 빙상경기대회에서 국내 첫 공식경기를 가졌다. 197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하지만 성적은 늘 신통치 않아 3그룹을 전전하면서 국제 빙상계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런 대한민국 대표팀이 꿈의 무대인 세계 아이스하키 1부리그로 승격했다. 기적에 가까운 쾌거다. 여자 피겨스케이팅 싱글 종목의 김연아 선수와 수영 자유종목 박태환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과 견줄만하다.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 4강 신화를 다시 보는듯한 감동을 줬다. 백지선 감독의 리더십과 귀화선수들의 활약,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의 든든한 후원이 조명을 받고 있다. 외신들도 열악한 여건을 딛고 당당히 1부리그에 이름을 올린 대표팀에 '놀라운 일'이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선수들의 놀라운 선전에 아이스하키를 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귀족 스포츠에 비인기 종목이란 비난과 설움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캐나다, 미국 팀을 상대로 꿈의 경기를 하게 된다. 올해에도 승격에 실패한 일본은 2단계 아래인 3부리그에 출전한다. 격세지감이다. 우리 대표팀은 그전에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한다. 금의환향한 백 감독과 선수들은 동계올림픽에서 또 한번 기적을 보여주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이스하키 동호인들은 물론이고 우리 국민이 평창 올림픽을 기다리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홍정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