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십육계(三十六計)'는 손자병법(孫子兵法)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병법서로 꼽힌다. 이 책은 크게 보면 ▲승전계(勝戰計) ▲적전계(敵戰計) ▲공전계(攻戰計) ▲혼전계(混戰計) ▲병전계(竝戰計) ▲패전계(敗戰計) 6개의 챕터로 나뉘는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36계 줄행랑'은 바로 패전계의 마지막 계책인 '주위상(走爲上·도망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36계 가운데 주위상은 가장 간편한 계책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첫째, 의리나 명분 때문에 당사자가 도주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초나라의 항우는 유방이 이끄는 한나라군의 포위망에 갇히게 됐을 때, 배를 타고 강남으로 도망가 훗날을 기약하자는 부하들의 권유를 거부한 채 단기로 적진에 뛰어들어 끝내 자결하고 만다. 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포로로 잡혀서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기로 그는 죽음을 택한 것이다. 이처럼 도망이라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극심한 모욕을 참을 수 있어야 실행이 가능하다.
둘째, 도주하는 목적은 자신의 부족한 실력을 보완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자신을 추격해 결국 전군이 몰살당한다면 도망가지 않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따라서 도망의 시점을 치밀하게 계산한 뒤 기회를 잡은 다음 상대방이 추격할 수 없도록 멀리 도망가야 하는 것이다. 한나라의 유방은 평생 도주를 반복했지만 이런 원칙을 지켜 결국은 항우에게 승리를 거두고 한 고조가 됐다.
최근 바른정당 소속 국회의원 13명이 탈당을 감행했다가 국민들로부터 거센 지탄을 받고, 돌아가려던 자유한국당에서조차 쉽게 받아 들여주지 않아 당분간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하기 어렵게 됐다. 결국 1명의 의원은 탈당을 번복해 바른정당에 남겠다고 했고, 추가 탈당하려던 의원도 잔류하기로 했다. 이 사건 이후 오히려 바른정당에는 후원금이 급증하고 당원 가입이 100배나 늘었다. 이는 정치를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져 철새 정치인들의 꼼수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도망도 정확한 계책을 세우고 타이밍을 봐가면서 해야지, 명분도 없이 밀어붙였다가는 아무것도 못 건진다.
/김선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