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방직 인수 '삼양모방'으로
전주시 요청에 1970년 공장설립
폴리에스테르 생산… 고속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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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
삼양사는 1963년 2월에는 자금난에 빠져 있는 전주방직을 인수해서 삼양모방주식회사로 재발족 했다.

전주방직은 일제 말기에 조선마방(朝鮮麻紡)주식회사 전주공장으로 출발했는데, 공장 건축과 기계설비 등이 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8·15해방을 맞았다.

1946년 민간에 불하되어 고려방직으로 상호를 바꾸는 한편 마방(麻紡)에서 견방(絹紡)으로, 견방에서 모방으로 변경해 군납용 복지를 생산하다 6·25전쟁으로 재기불능 지경에 이르렀다.

그 후 학교법인 중앙학원(현 고려중앙학원)이 정부로부터 불하받아 전주방직회사라는 상호를 달고 운크라(UNKRA)로부터 30만 달러를 원조 받아 시설을 보완했다. 1954년부터는 견방 일부와 소모방 생산에 착수했으나, 극심한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면서 결국 6천만원(현재 가치 21억여 원)에 삼양사에 넘겨진 것이다.

1963년 2월 전주방직을 인수한 삼양사는 전주방직의 상호를 삼양모방주식회사로 변경했다. 인수 첫해인 1963년에 소모방 10만㎏과 위탁가공품 6만㎏을 생산했지만, 이후 적자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삼양사가 화섬공업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것은 폴리에스테르 사업에 진출하면서 부터다. 삼양이 화섬에 뜻을 굳히고 준비에 착수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었다. 삼양모방은 1977년 6월에 삼양사에 합병되었다.

삼양사는 1966년 7월에 일본의 미쓰비시 상사(三稜商事)와 789만 달러의 차관도입에 합의했다.

하루 생산량을 스테이플 파이버(Staple fiber) 12톤(M/T)과 필라멘트(Filament) 13톤으로 확정하고 소요 자금인 내자 11억 478만원과 외자 789만 달러 등에 대해 1966년 10월 5일 정부허가를 받아냈다.

공장 설립을 위해서 삼양사는 울산 공장 옆의 8만여평 유휴지에 이미 4천만원을 들여 공장 부지를 조성했다. 그런데 당시 전주시는 새로 공업단지로 지정된 팔복동 일원에 공장 부지를 조성하면서 삼양의 폴리에스테르 공장 유치를 강력히 희망하고 나섰다.

삼양은 즉시 팔복동 2가 339에 있는 단지 내 부지 9만7천292평을 전주시로부터 평당 344원에 매입했다. 이곳에 1968년부터 공장 설립 공사에 착수, 1969년 12월에 폴리에스테르 스테이플 파이버와 필라멘트 방사(紡絲) 및 연신(延伸) 시설을 세웠으며, 1970년에는 국내 최초로 중합시설을 준공했다.

삼양의 폴리에스텔 '트리론'이 탄생된 배경이다.

전주공장은 이후 지속적인 설비확장과 품종 다양화를 통해 1984년에는 폴리에스테르 하루 생산량 164.5t의 생산능력을 보유하는 세계 굴지의 대단위 공장으로 성장했다.

삼양사는 1988년 1월에는 한국의 호남정유, 일본의 미쓰비시(三稜化成)와 3사 합작으로 자본금 30억원 삼남석유화학(三南石油化學)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삼양사 -제품구입, 미쓰비시-기술제공, 호남정유-원료공급 등이 사업내용으로, 투자비율은 삼양사 40%, 미쓰비시 40%, 호남정유 20% 였다. 1990년 4월에는 전남 여수시 적양동의 3만2천418평 부지에 폴리에스테르 섬유의 주원료인 TPA(Telephthalic Acid)를 생산하는 연산 28만톤의 공장을 세웠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