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하와이 망명 전까지 머무른 이화장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사저(私邸)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인평대군의 저택인 장생전이 모태 건물이라고 한다. 사적(史蹟)으로 지정될 만큼 귀한 가치를 인정받지만 끝내 주인을 다시 볼 수 없었다. 수년 전 출입을 막은 이화장을 먼 발치에서 감상했는데, 한 눈에도 구도와 건물 모양새가 빼어났다. 4대 윤보선 대통령 사저는 99칸의 대저택으로 1870년 경 지어졌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가옥으로 꼽힌다. 10대 최규하 대통령 사저는 2005년 그가 사망한 뒤 검소했던 유품들이 공개돼 국민들에게 울림을 줬다. 50년 된 선풍기, 30년 된 라디오가 시선을 모았다.
16대 고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주택은 그의 돌연한 서거로 주목받았다. 아방궁이란 비판도 있었는데, 집 보다는 부엉이 바위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11~12대 전두환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은 골목길 성명과 검찰 출두 등으로 언론에 빈번하게 노출됐다. IMF 사태 시점에 물러난 14대 김영삼 대통령은 18억원을 들여 상도동 자택을 개수, 비판의 대상이 됐다. 나라와 국민은 쪽박 신세가 됐는데 큰 돈을 들였어야 했느냐는 거다. 동교동에 오래 산 15대 김대중 대통령은 일산으로 옮겼다가 퇴임 후 돌아왔다. 그 역시 많은 돈을 들여 사저를 꾸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근 삼성동 자택을 팔고 내곡동으로 이사를 했다. 주인이 없는 빈 집인데도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일부 주민은 '왜 하필 우리 동네냐, 시끄럽게 됐다'고 불만이다. 변호사 비용을 대려 집을 팔았다고 한다. 주인이 탄핵에 이어 영어의 몸이 되면서 삼성동 저택도 전직 대통령의 집이 아닌 일반인 주택으로 신분이 격하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홍은동 연립주택에 거주해 왔다. 당선이 확정된 9일 밤에는 이웃과 지지자들이 골목길까지 메워 잔칫집 분위기를 달궜다. 문 대통령은 양산에도 저택이 있다. 퇴임 후에는 아마도 양산에 거주할 것이란 전망이다. 대통령 사저도 그 주인의 처지에 따라 명·암이 갈린다. 양산 주택은 어떤 운명에 놓이게 될까.
/홍정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