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한전KPS 인천 지역 현장사무소 과장으로 근무하던 A(52)씨는 지난 2007년 3월 이 회사에서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지인의 명의를 가져오면 한 달에 20일 이상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꼬드겼다. 일용직 근로자라도 한 달에 20일 이상 일하면 국민연금이나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 회사에서는 일용직 근로자의 근무 일수는 20일 미만으로 제한해 왔다. 하루 일당 10만원 정도를 받는 일용직 근로자들은 돈을 더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A씨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이들에게 받은 명의를 이용해 실제로는 일하지 않은 '유령 직원'을 만들어 한 달에 20일 미만으로 근무한 것처럼 서류를 허위로 꾸몄다. A씨가 2016년 12월까지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만들어 낸 '유령 직원'은 39명에 달한다.

A씨는 '유령 직원'이 받은 급여 중 일부는 20일 넘게 일한 일용직 근로자에게 지급하고, 나머지는 본인이 챙겼다. A씨는 이렇게 빼돌린 5억원 중 자신이 1억8천만원을 가져갔고, 일용직 근로자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자신의 선임 과장인 B(46)씨에게 8천만원, 현장사무소장 C(63)씨와 다른 과장 6명에게도 3천만원을 건넸다.

A씨로부터 돈을 받은 B씨 등 관리자들은 일용직 근로자 고용 계약서류를 허위로 만들어 낸 사실을 묵인했다. A씨는 허위로 받아낸 급여 중 일부를 사무실 경비나 회식비 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사무소 관리직 직원들이 공모해 서류를 꾸며낸 탓에 본사에서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이와 함께 A씨는 명의를 전달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 8명을 서류상으로만 실직 처리한 뒤, 이들이 실업 급여 4천만원을 받도록 도왔다.

하지만 실업 급여 부정 수급을 조사하던 경찰이 이들 중 한 명의 계좌에 A씨가 주기적으로 송금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A씨의 범행은 덜미를 잡혔다.

인천부평경찰서는 실제 일하지 않은 일용직 근로자들을 근무한 것처럼 서류를 만들어 5억원의 급여를 가로챈 혐의(상습사기)로 A씨와 B씨를 구속했다고 18일 밝혔다. 또 같은 혐의로 C씨 등 관리직 6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이와 함께 이들에게 통장을 양도한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로 일용직 근로자 31명과 근로자들의 지인·가족이 포함된 통장 양도자 8명, 실업 급여를 부정 수급한 일용직 근로자 8명도 각각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범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가족이나 지인 등 믿을 만한 사람을 근로자로 만들었다"며 "A씨가 관행적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어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