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으로 시작된 박근혜 몰락속 '신 버전'
먼 훗날 증오와 맹목·변명과 궤변 좌표로
차라리 그게 위안될 수 있다는 생각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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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베르사유의 장미'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은 다이아몬드 목걸이였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3년 전, 몰락한 귀족부인이 출세욕에 사로잡힌 경박한 추기경과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파는데 혈안이 된 보석상 사이에서 희대의 사기극을 벌였다. 돈과 목걸이를 한꺼번에 가로채기 위해서였다. 당시 프랑스 궁정의 부패와 타락을 극명하게 드러낸 이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앙투아네트였다.

그녀는 결백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한 장본인이 앙투아네트라고 굳게 믿었다. 철천지원수인 오스트리아에게 금쪽같은 아들과 형제의 목숨을 빼앗긴 프랑스인들이었다. 그곳 태생 왕비가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종신금고형에 처해졌던 백작부인은 파리를 탈출한 뒤 거짓회고록을 썼다. 왕비가 주모자라고 몰아붙였다. 왕비와 왕실에 대한 프랑스 민중의 증오심이 들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이웃한 독일에서 혁명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던 괴테가 "이 사건이야말로 프랑스 혁명의 서곡"이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1986년 '피플파워 혁명'으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부부가 하와이로 줄행랑을 쳤다. 그런데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은 그들이 아니라 주인을 잃은 말라카낭 궁의 한 지하방에 집중됐다. 가로세로 각각 21m 크기의 방에서 영부인 이멜다가 버리고 간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고급 이브닝가운 2천 벌, 유명브랜드 속옷 3천500장도 목록에 포함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끈 것은 구두였다. 금이나 은으로 장식된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걸을 때마다 배터리에 의해 빛을 발하는 구두도 있었다. 전용보관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구두 수가 무려 3천켤레나 됐다.

이멜다는 망명지에서 영국 일간지와 인터뷰를 했다. "탐욕은 자선이다. 모든 이들에게 나눠주려면 일단 탐욕스럽게 모아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궤변이 먹혔던 것일까. 1991년 사면을 받아 귀국한 이멜다는 이듬해 치러진 대선에서 234만표를 받으며 정치적으로 재기했다. 이어 1995년 총선에서 아들은 상원의원, 자신은 하원의원에 각각 당선됐다.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도 득표율 99%라는 믿기 힘든 기록을 남겼다.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물러난 뒤 관저에서 거울로 된 방이 발견됐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사방이 대형거울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요가를 위한 운동공간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운동실은 따로 있었다. 침실로 쓰던 방이 너무 넓고, 무서운 꿈도 꾸고 해서 그 방을 운동실로 바꾸었다는 증언이 있다. 그렇다면 거울방의 용도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박근혜의 몰락은 괴담으로부터 시작됐다. 흔하디 흔한 '강남여자' 최순실과의 미스터리한 관계가 서막이었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최순실 아버지와의 소문은 사교(邪敎)의 주술적(呪術的) 관계로까지 비약됐다.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전 남편과의 얘기도 유령처럼 세상을 떠돌고 있다. 당사자들이 때로는 무심한 듯 지나치려 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해명했지만 세상은 이들을 괴담으로부터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다. 이런 판국에 '거울방'은 괴담의 신 버전이다.

증오와 맹목은 앙투아네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상식적으론 이해하기 어렵지만) 변명과 궤변이 이멜다의 재기에 발판을 놓았다. 어떤 게 사실이고,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했고, 믿고 싶은 대로 믿었다. 증오와 맹목은 사실을 외면했고, 변명과 궤변은 진실을 덮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대통령의 '거울방'도 마찬가지다. 사실과 진실, 그런 것들과는 무관하게 먼 훗날 증오와 맹목, 변명과 궤변의 좌표 그 어디쯤 위치하게 되리라. 그런데 어쩌면 그게 차라리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무슨 까닭인가.

/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