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소설가 이언 플레밍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명문 이튼 칼리지와 샌드허스트 왕립군사학교를 다녔지만 여자 문제로 모두 중퇴했다. 이후 모스크바 주재 로이터 통신기자로 일했으며 후에 주식 중개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해군의 정보부에서 특공대를 파견·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플레밍은 해군에서의 활동을 바탕으로 첩보원 '제임스 본드'에 관한 아이디어에 착안, 자메이카에 있는 자신의 별장 '골든 아이'에서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첫 소설 '카지노 로얄'을 완성해 1953년에 출간한다. 카지노 로얄은 한 달 만에 초판이 매진되는 성공을 거두고 플레밍은 12편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이어나간다.
사실 우리에게 제임스 본드는 소설보다 1962년부터 2015년까지 총 24편이 제작된 영화 '007시리즈'로 훨씬 더 많이 알려졌다. 제임스 본드의 첩보원 명인 007의 '00'은 영국 비밀 정보국인 MI6에서 허가해 준 살인면허이며, '7'은 '살인면허를 가진 일곱 번째 요원'이라는 뜻이다. 플레밍 소설에 따르면 제임스 본드는 1922년생으로 영국의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를 졸업하고 영어·프랑스어·독일어 등 3개 국어를 구사한다. 사격술·격투기에 능해 첩보원으로서의 자질도 뛰어난 데다 매력적인 외모와 화술을 가졌다.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은 당시 플레밍이 탐독한 조류관련 서적 '서인도제도의 새들'의 저자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배우는 숀 코너리를 포함해 다니엘 크레이그까지 총 7명이다. 이중 007시리즈의 황금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죽느냐 사느냐(1973)'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1974)' '옥토퍼시(1983)' '뷰 투 어 킬(1985)' 등 12년 동안 7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 로저 무어(89)가 지난 23일 스위스에서 암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경찰관의 아들로 태어나 2차 대전 중 영국군 장교로 복무한 뒤 제대 후 배우가 됐다.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 액션과 로맨스 장면 모두 충족시켰던 그는 아마도 소설 속 제임스 본드 캐릭터에 가장 근접한 배우가 아니었을까.
/김선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