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받은 책선물이었다. '선배가 느꼈던 떨림'이란 이름의 감동은 내게 또 다른 울림이 되어 전해졌다. 첫 장을 넘기면서 빠져들었던 이상석 선생님의 교단 일기는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긴 여운으로 남았다. 책에는 나의 이야기가, 내 친구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우리 학교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져 있었다.
가출을 일삼고 친구들을 괴롭히던 길청과 정록은 우리 반 꾸러기 친구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이들은 탈출구가 없었다. 선생님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있었다면 그 방황이 그리 길지도, 끝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지 모른다.
꾸러기 아이들을 사랑과 믿음으로 감싸주시던 이상석 선생님의 모습에서 아이들의 튼실한 언덕이 되어주는 넉넉한 형의 모습을 보았다.
1999. 교사가 꿈이었던 열아홉 살의 풋풋했던 그 대학생은 드디어 꿈에 그리던 교사가 되었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지, 또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첫 출근을 했다. 이상석 선생님처럼 '외할매' 이야기로 시작을 해 볼까. 아니면 첫사랑이야기는 어떨까. 모든 것이 즐겁기만 하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떨리기만 하다. 교사들 사이에서 학기 초마다 경전의 문구처럼 위력을 발휘하며 떠도는 말이 있다. 아이들을 초반에 꽉 잡아야 일 년이 편하다는 말이다.
교육학 시간에 배웠던 인간중심의 각종 교육이론은 한 순간의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정글의 법칙이 '현실'이라는 이름의 무게로 교사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 유혹을 이겨내는 마법의 주문이 있다. 바로 이상석 선생님이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에서 보여주었던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다.
1999년 그해 여름, 우리는 동료 교사로 만났다. 책으로 만난 지 꼭 11년 만이다. 충청도 자락 작은 마을 무너미에서 열린 글쓰기연구회 연수에서 함께 밤을 지새우며 아이들에 대해서, 교사의 삶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떨림'이 현실이 되어 바로 내 눈 앞에 있었다. 밤이 너무 짧았다. 나는 행복했다.
2017. 그 사이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너그러웠으나 동료들에게는 때론 모났던 나이 서른의 청년교사는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기고 오십을 바라보는, 세상과 사람에 대해서 조금은 넉넉해진 중년의 교사가 되었다.
시간은 삶의 곳곳에서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본다. 좋았던 기억보다 좋지 않았던 기억이 더 많았다. 그래서 더욱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때로는 그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찾게 되는 이상석 선생님의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는 나에게 처음마음을 간직하게 해 준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첫 만남의 그 생생했던 '떨림'의 기억은 유통기한이 없다. 교사를 꿈꾸는 아이들이 읽었으면 한다.
나는 지금 29년 전의 그 '떨림'을 얘기하며 후배들에게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를 건네는 또 한 명의 선배가 되었다. 감동은 전해져야만 하는 운명인가 보다. 그 울림을 전해줄 수 있는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장학관
※위 독서정담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