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유산 파괴 멈춰라"
31일 오전 인천 중구청 앞에서 옛 애경사 건물 철거에 분노하는 인천시민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근대산업유산 상습파괴를 규탄하고 있다. 옛 애경사 건물은 지난 30일 중구청이 주차장 건설을 위해 철거하다 시민단체의 반발로 일부 골조만 남은 채 철거가 중단됐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유적 국가관리 21곳에 불과
개인 소유물 제재방법 없어
개발논리 유산 철거 잇따라
전수조사·조례제정 지적도


1912년 설립돼 1962년까지 국내 최대 비누공장이었던 인천 중구 송월동 옛 '애경사' 건물이 주차장 조성사업으로 사라질 위기(5월 31일자 23면 보도)에 처한 가운데, 근현대 유적 중 지정·등록되지 않은 건축물 보존에 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인천의 경우 근대건축물 중 역사적 가치가 있을 만한 유적 상당수가 개발수요가 높은 중·동구 구도심에 몰려 있어 무차별적 개발을 제한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1일 인천공공성네트워크와 자원디자인연구소 등 시민단체는 중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개발논리에 빠져 근대산업문화유산을 파괴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며 "지자체가 인천근대산업문화유산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이고 보존대책을 시급히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인위적·자연적으로 형성돼 역사적·예술적·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있는 옛 유산의 경우 국가나 지자체가 문화재로 지정하거나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문화재청장이 등록할 수 있다.

지난 2012년 인천시립박물관이 발간한 학술조사 보고서 '인천 근·현대 도시유적'을 보면 인천의 근·현대 도시유적은 530곳으로 이중 중·동구에만 446곳이 있다.

이 중 시도유형문화재, 등록문화재, 사적으로 국가에서 관리되고 있는 곳은 21곳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사유 건물로, 개발을 앞두고 있거나 건물터만 남은 채 방치되고 있다. 이 중 10~20%는 이미 공영주차장 등 재개발로 철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근대 역사가 깃든 오래된 건물이 지자체의 주차장 조성사업으로 사라진 사례는 적지 않다.

1954년 설립돼 인천 최초 소아과로 알려진 신포동 자선소아과는 지난 2012년 헐리고 그 자리에 공영주차장이 조성됐다. 화수동 조선기계제작소가 설립된 1937년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근로보국대합숙소 역시 지난해 8월 공영주차장이 됐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산업정책을 뒷받침한 특수은행으로 알려진 조선식산은행 인천지점 역시 공영주차장으로 조성되고, 1939년 설립된 조일양조장과 1941년 조성된 동방극장 역시 각각 2013년과 2015년 철거돼 공영주차장이 됐다.

모두 개인소유 건물로 개인이 문화재 등록신청 대신 개발·매각을 결정했을 때 제재할 방법은 없다. 게다가 근·현대 건축물의 경우 설립 연도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정이 잘되지 않다 보니 조례 제정 등을 통해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회숙 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 공동대표는 "인천시가 개발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몰살하고 있다"며 "개인이 개발하는 것까지 막지 못하더라도 지자체가 매입의지를 보이든, 주차장 조성은 막을 수 있도록 관련 조례를 제정해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함께 개발심의를 해 근대 유산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