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그리는 곳이 진짜 고향
여기서 저기서 살아라 할것 없고
정해놓고 삶 방향 택할 수 도 없다
이효석 시절에도 지금도 말 많아
세상은 혼탁하고 어지러운 것

이미 근 한 해 전에 필자는 평창에서 이효석을 가지고 뭔가를 만드는 사업의 자문 역할을 한 번 한 적 있는데, 한마디로 끔찍한 경험이었다.
정부나 기관에서 부를 때 응하지 않으면 도도하게 구는 것도 같고 또는 눈총을 받을 것도 같아서 싫어도 좋아도 가는 쪽을 택하게 마련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차려진 자리가 한갓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으며, 문학에 대한 어떤 배려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도대체 '내'가 왜 여기 와 있나? 하는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효석은 평창이 고향이었지만 고향을 표나게 내세운 적은 없다. 고향이 상기시키는 자연을 너무나 사랑한 작가였지만 그 고향의 특권적인 위상을 주장한 적은 없다. 대신에 그는 고향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말하면서, 어떤 사람이 태어난 곳만이 고향이 아니요, 그가 그리며 살고 싶어 하는,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고향이 또한 이상 속의 고향이라 했다.
필자는 작가 연구를 좋아하고 작가의 생애 속에서 피어난 작품을 사랑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최인훈과 이호철의 작품에 좀 더 관심을 표명해 왔다. 때문인지 이호철 작가께서 지난해에 애석하게 세상을 떠난 서울 은평구에서는 고향이 이북 원산인 그분이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세월을 기려 이호철 문학관도 만들고 더하여 뭔가 의미 있는 작업도 계획하는 듯했다.
여기 필자가 또 오지랖 넓게 참여하게 되기는 하였는데, 이 은평구의 작가 기리는 방식, 작고한 작가를 현재에 의미 있게 만들고자 하는 방식에는 뭔가 성의 같은 것, 사려 같은 것이 있어 보여 좋았다. 그렇다면 이호철이라는 이 고향 잃은 실향민 작가는 저 세상에서도 자신이 깃들여 살아온, 미성 아파트 있는 은평을 또 다른 고향으로 위안 삼아도 좋으리라.
그러니 자기 타고난 고향만 고향이 아니요, 그 어떤 사람이 그리는 이상적인 삶의 공간은 또 다른 고향이 될 수 있는 것이요, 고향 떠나 잃어버린 사람도 다시 정 붙이고 생활의 구체적인 에너지를 오래 쏟아부으면 고향이라 불러도 손색없게 되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개중에는 아예 고향 없는 사람, 고향을 그리되 이상의 고향을 아직도 못 찾고 심중으로만 그런 공간을 그리면서, 아직 나타나지 않은 그 고향 대신에 고향을 아직까지 찾기만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수선화'처럼 사랑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문학을 연구하면서, 필자는 최인훈 같은 작가가 바로 그런 문학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저 한반도 북쪽 회령에서 태어나 원산으로 옮겨와 해방 공간을 보내고 6·25 전쟁이 발발하자 어떤 계기로 인하여 부산까지 배를 타고 남하하지 않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러한 자기 삶의 궤적으로부터 기인하여 자기 스스로를 일종의 '난민'이라고, 전쟁과 분단과 대립으로 얼룩진 한반도는 일종의 난파선과 같고, 그 자신은 그런 난파선에 올라타 바다를 헤매며 진짜 고향을 찾고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난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작가에 관해 생각하기에 그렇다는 것이고, 필자가 그렇게 헤아릴 수 있는 한 이 작가는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에까지 살아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지금 서울 근교 일산하고도 화정인가 하는 곳에 거주하고 있는데, 그 아파트라는 것이라야 별반 특별할 것도 넓을 것도 기념할 만한 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그가 그곳에 오래 산 것을 보면 누군가 나중에 그를 기념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곳은, 그가 언젠가 청춘 시절에 살았다는 서울 용산 청파동 아니면 바로 이 서울 근교 같은 곳이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은 할 것이다.
진정한 작가에게 사실은 고향이란 없는 것이고, 있어도 없는 것이나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마음속에 그리는 고향이 더 진짜 고향일 수도 있다. 그리고 작가는 고향 같이 안주할 곳은 생각하지 않고 나아가 자기가 도대체 어느 페루의 바닷가에서 생을 마칠지 아이슬란드의 화산 밑에서 끝낼지 몰라야 할 수도 있다. 페루에 바다가 있다면 말이지만 아마 '다행히'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반 사람들이야 작가를 보고 여기 살아라 저기 살아라 할 것도 없는 일이요, 작가도 구태여 정해 놓고 삶의 방도와 방향을 택할 수도 없는 일, 그럼에도 세상은 이효석 시절에도 고향을 놓고 말이 많았고, 지금도 누가 어디 있느냐를 놓고 설왕설래가 많다. 이때나 저때나 세상은 혼탁하고 어지러운 것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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