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국제시장'은 1950년대 한국전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 시대 아버지 '덕수'(황정민 분)의 이야기다. 2014년 12월 개봉해 이듬해 상반기까지 누적 관람객 1천426만2천명으로 역대 2위 기록을 세웠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청년 가장 덕수는 독일 광부를 자원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의 역경을 이겨내고 같은 처지의 파독 간호사(김윤진 분)와 함께 귀국한다. 갱도가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생환하는 장면이 짠하다.
노동운동가 전태일은 1960년대 평화시장 봉재공장의 재봉사, 재단사로 일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했다. 청계천 공장단지 노동자들의 노동운동 조직 바보회를 결성했다. 서울시와 노동청을 찾아가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으나 묵살 당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으나 전달되지 못했다. 1970년 근로조건 시위를 주도하다 11월에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평화시장 입구에서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라이터로 분신 자살했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노동 운동이 재확산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뜨거운 막장에서 탄가루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석탄을 캔 파독 광부, 병원의 온갖 궂은일까지 견뎌낸 파독 간호사, 그 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조국경제에 디딤돌을 놓았다"고 말했다. 이어 "청계천변 다락방 작업장, 천장이 낮아 허리조차 펼 수 없었던 그곳에서 젊음을 바친 여성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에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추념사를 들으면서 파독 광부·간호사들과 청계 노동자들은 눈물을 훔쳤다. 파독 간호사들은 '조국이 우리를 잊지 않고 제대로 대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지지도 않는 그 자체로 온전히 대한민국이라고 강조했다. 서해 바다를 지킨 용사들과 그 유가족의 마음에 (태극기가) 새겨졌다고 말했다. 파독 광부와 서해 바다 용사를 애국자라고 불렀다. 대통령 후보 문재인과 대통령 문재인은 분명 다른 모습이다. 새 정부에서는 애국도 편 가르는 구태(舊態)가 종식되기를 기대해 본다.
/홍정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