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가까운 애경사 건물 순식간에 사라져
동화마을 주차장 만들기위해 철거 한다지만
편의위한 사라짐에 많은 이들 일쑤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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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사라지는 것들은 일쑤 우리를 그리움에 젖게 한다'.

기자 초년병 시절, 한 선배의 글에서 접했던 문장이다. 수인선 협궤열차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담았다는 설명을 어렴풋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문장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일쑤'라는 단어의 쓰임새 때문이다. 여기에서 '일쑤'는 명사가 아닌 부사로 쓰였다. 명사로서의 '일쑤'로 문장을 재구성한다면 '사라지는 것들은 우리를 그리움에 젖게 하기 일쑤다' 정도로 쓸 수 있겠다. 그러나 '일쑤'가 '드물지 아니하게 흔히'란 뜻의 부사로 활용된 서두의 문장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단어의 위치(정확히는 품사) 하나 바뀐 것인데 더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것 같다.

얼마 전 오래된 건축물 하나가 사라지는 현장에서 이 문장을 다시 떠올린 적이 있다. 인천 중구 송월동 애경사 건물의 철거 현장에서다. 무너져 내린 벽돌 더미와 목재 부스러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옛 건축물의 잔해에는 '사라진 것'이 토해낸 허무와 비애가 깃들어 있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이 건축물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데는 두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인천시 중구가 지난달 30일 이른 아침 인근 동화마을의 주차장을 조성한다며 전격적으로 철거작업을 단행한 것이다.

비록 법적으로 보호받는 문화재는 아니라 하더라도 인천의 개항 초기 주요 산업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라는 게 이 건축물에 대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 중구는 인근 동화마을의 주차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 건축물을 허물었다. 물론 중구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주차난으로 인한 주민과 관광객들의 불편을 외면할 수 없고, 10여년 전부터 건물에 고물상이 들어서면서 환경 피해를 호소해 온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을 수도 없었을 터이다.

중구와 주민들의 입장 모두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주차장을 조성하기 위해 근대건축물이 헐린 사례는 애경사뿐 만이 아니다. 인천 최초의 소아과로 알려진 신포동 자선소아과, 근로보국대합숙소, 조일양조장과 동방극장 등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건물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공교롭게도 주차장이 들어섰다.

자동차는 대표적인 현대문명의 이기(利器) 중 하나다. 그런 면에서 주차장은 현대문명이 제공하는 편의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프라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들 주차장은 현대사회에서 오래된 것의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인 셈이다.

이처럼 '편의를 위한 사라짐'은 '오래된 것'의 숙명일까? 애경사 철거현장을 보기 위해 옆 건물 계단을 오를 때, 참담한 표정으로 벽돌더미를 내려다보던 한 사진작가와 마주쳤다. 오래전에 애경사를 촬영한 적이 있다는 그는 "건물은 그대로 두고 내부를 주차장으로 활용했어도 되었을텐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처럼 건물 내부를 주차장으로 활용하거나, 아니면 애경사 건물이 비누공장이었던 점에 착안,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비눗방울 이벤트나 스토리텔링으로 동화마을과 연계하는 방안 등이 행정관청 주도로 논의됐다면 어땠을까?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많은 이들이 일쑤 아쉬움에 젖지는 않았을 듯싶다.

/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