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례 유예끝에 내년 시행 앞둬
수많은 강사들 대학서 쫓겨났고
교원지위 회복 농성 3500일 넘어
이제는 '돌려 달라'… 그래야만
고용·임금·차별 문제도 개선 가능
그러다 어느 날 정말 미끄러져 떨어지고 말았다. 내가 맡고 있던 모든 강의가 모조리 폐지 혹은 미개설로 통고 받은 것이다. 타당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건 그냥 일방적인 해고였고 추방령이었다. 성실하게 공부하고 열심히 가르쳤으니 여기가 내가 발 딛고 설 대지의 일부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한국의 대학은 그런 사람이 부적격자가 되고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다. 아니 거기까지만 했으면 그냥저냥 대학에서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고, 대자보를 붙이지 않고, 언론과 인터뷰 하지 않고, 페이스북에 글을 쓰지 않고, 저널에 기고하지 않고,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지 않고, 동료 강사와 학생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시위하지 않고, 왜 정당한 이유 없이 강좌를 없애느냐고 묻지 않고, 다음 학기든 그 다음 학기든 무슨 강의든 줄 때까지 기다리며 가만히 있었더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해버린 이후에 대학에서 살아남기 힘든 부적응자는 이제 대학에 살려두면 안 되는 추방자가 되었다. 시민이 아닌 자가 시민적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주위를 돌아보니 추방자는 한 둘이 아니었다. 각각의 사안은 달라도, 지금 대학과 싸우고 있는 모든 해직강사들의 공통된 '죄'는, 불복종의 죄다. 항거했기 때문에 추방되었고, 싸우고 있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다. 박정희 정권이 1977년 교육법을 개정하여 대학 강사에게서 교원 지위를 박탈한 것은 바로 이런 강사들을 대학에서 쫓아내기 위해서였다. 그 후로 전국의 대학 강사는 갑자기 법적 근거가 상실되어 지금과 같은 '시간 강사'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갖게 되었다. 노동시장이 유연화 되자 시간강사는 대학이 더 쉽게 맘대로 쓰고 버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언제든 무슨 이유로든 자기의 대지를 빼앗기고 추방될 수 있는 이 존재는, 거주권도 시민권도 없는, 대학의 불법체류자이다. 프랑스에서는 증명서류(papier)가 없는 불법체류자들을 '쌍빠삐에(sans papier)'라 부른다. 마치 종이 한 장이 존재의 근거가 되는 것처럼, 재밌는 말이다. 그들이 필요해서 데려왔고 필요한 곳에서 일을 하고 있어도 신분증이 없어지면 '불법의 존재'가 되는 것처럼, 다른 교수와 똑같은 연구자이며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우리도, 대학에 없어선 안 될 존재이면서도 '교원'이란 법적 지위를 갖지 못해 쌍빠삐에와 같은 사람들로 존재해왔다.
그동안 수많은 대학 강사들이 죽음으로 이 문제를 고발했다. 2008년 건국대 강사 고 한경선 박사는 대학의 부실한 강의 교재 강매에 항의하고 강사료를 강의시수의 절반밖에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노동부에 진정했다가 임용길이 막히자 절망하여 이런 사실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2010년에는 조선대 강사였던 고 서정민 박사가 논문대필과 임용비리를 고발하고 자살했다. 이런 일련의 비극적 사건들로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상황이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고,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을 골자로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2011년 12월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세 차례나 유예되었고, 오는 2018년 다시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에도 수많은 강사들이 대학에서 쫓겨났고, 대학 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정상화를 요구하는 해직강사들의 국회 앞 천막농성이 3천500일을 넘어섰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교원 지위를 돌려 달라. 그게 시작이다. 그리고 나서야 고용과 임금과 차별의 문제도 우리 자신의 힘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