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의 런던 화재를 가리켜 워싱턴포스트는 'London inferno(단테 '神曲'의 지옥편)'라고 했다. 지옥도 불가사의 지옥, 납득할 수 없는 지옥이다. 그 '그렌펠(Grenfell) 타워' 24층 아파트처럼 고층건물 전체가 시뻘건 불길에 싸인 건 본 적이 없고 화재 발생 5일이 지나도 사망자 58명을 추정할 뿐 정확한 피해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예도 들은 적 없기 때문이다. 더욱 어이없는 건 '방화벽이 있으니 안심하고 구조를 기다리라'고 했다는 거다. 어서(세월호) 듣던 소리 아닌가. 최고(最古, 最高) 선진국 영국이 나락으로 전락하는 건가 몰락 조짐인가. England, Britain, United Kingdom, 일본에선 '이기리스'라 부르는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이었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인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스리랑카와 아프리카 제국 등 41개 식민지가 지구를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마그나카르타(大憲章) 법치(法治)만 해도 아득한 1215년이었고 청교도혁명으로 공화정부가 수립된 건 1649년이었다. 19세기 전반의 산업혁명도 영국이 주도했다. 증기기관차 시험제작은 1814년이었고 1920년엔 120개 철도회사가 존재했다. 지하철도 놀랍다. 찰스 피어슨(pearson)이 두더지 굴에서 착상, 세계 최초 런던 지하철 개통을 한 건 1863년 1월이었고 일본의 하야카와 노리스구(早川德次)가 그 런던 지하철을 견학, 도쿄 지하철 1호선을 완공한 건 1927년이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은 1974년이었으니까 이것만 비교해도 엄청난 격차다. 권력조직의 한 축인 노조도 영국에선 1868년 조직됐다. 일본의 메이지(明治)유신 바로 그 해였다. 식민지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던 셰익스피어의 나라, 6세기 그레고리오 성가(聖歌)에서 비롯된 음악 왕국도 영국이다.
그런 영국이 한심해졌다. 메이 총리 물러나라는 시위는 격화하고 켄진튼 첼시 구청은 시민 항의로 업무가 마비됐다. 작년 6월 EU 탈퇴(Brexit) 후 지난 15일까지 독일 국적 취득자는 2천865명이다. 최소 8년 거주와 독일어 능력이 조건부인데도 그 정도다. 이민행렬은 이탈리아 스웨덴 폴란드 헝가리 등 사방팔방 현대판 엑서더스다. 영국이 왜 저러나?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