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식 인수 당시 화신백화점 모습
박흥식 인수 당시 화신백화점 모습. /'화신50년사' 수록 사진

대공황 여파 물자 중요성 간파
파산 직전 귀금속 전문점 인수
日 진출막은 종로상인 덕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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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선일지물이 순조롭게 성장하자 박흥식은 사업 다각화에 착수했다. 그 첫 사업으로 만주사변 발발 3일전인 1931년 9월 15일에 서울 종로 2가 3번지에 자본금 100만원의 주식회사 화신상회(和信商會, 현 제일은행 본점 자리)를 설립했다.

신태화(申泰和)가 귀금속 전문점인 화신상회를 설립해서 운영해오던 것을 36만원(현재가치 약 57억여원)에 인수하여 주식회사로 재발족한 것이다. 일제가 1930년 금본위제로 화폐제도를 전환함에 따라 화신상회의 귀금속 판로가 막히면서 파산에 직면했던 때문이었다.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난이 가중되는 터에 전쟁위기까지 감돌 때는 물자를 매점매석할 수 있는 백화점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박흥식이 간파했던 것이다.

신태화는 1877년에 서울에서 출생해 어린 나이에 유통업에 투신해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는 "전쟁에 나서는 군인은 무기를 가져야 하듯이 상인은 신용을 가져야 한다. 또한 상인은 태도가 분명해야 한다. 흐리터분한 생각과 행동은 상계에선 금물이다"란 경영철학의 소유자로서 명석한 청년사업가인 박흥식에 매료되어 흔쾌히 화신상회를 넘긴 것이다.

화신상회를 넘겨받을 당시 박흥식의 나이는 29세였다.

박흥식이 인수하기 전부터 화신상회의 금은세공품 등은 수차례 우수상과 포상을 받을 정도로 품질이나 기술이 탁월해 대표적인 한국공예품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런 평가는 후일 화신백화점 귀금속부의 귀금속이 전국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밑거름이 되었다. 1922년에는 화신상회 내에 양복부를 신설했으며, 1923년에는 잡화부까지 추가해 백화점 형태를 갖췄다('화신오십년사' 103~105면).

이 무렵 서울의 명동 부근에는 일본 백화점들인 삼월(三越, 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삼중정(三中井), 정자옥(丁子屋, 현 롯데영프라자), 평전(平田)상회 등이 진출하여 치열하게 경쟁했다.

이 중에서 제대로 된 백화점은 본정통(本町通, 충무로2가)의 삼월(三越) 경성지점인데, 당시에는 1층 점포 안에 다다미를 깔아놓아 고객들은 신발을 벗거나 덧신을 신어야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백화점들은 성업 중이었다.

반면 종로에는 백화점이 전무했던 탓에 화신상회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광화문에서 종로3가에 이르는 지역은 전통적인 육의전(六矣廛)거리였다. 육의전이란 왕실과 육조거리에 있는 관청에 물품을 대는 6개의 어용상점들로 조선시대 전국 상업의 중심역할을 하던 시전(市廛)의 대표적 존재들이었다.

조선 태종 때 정부가 직접 상가건물들을 축조해서 상인들에게 분양해주었는데 개항(1876년) 무렵의 육의전 위치는 다음과 같다고 기록돼 있다.

종각역에서 광화문 방향 종로대로 좌측에는 면포전(綿布廛, 무명)과 면주전(綿紬廛, 명주)이, 우측에는 선전(線廛, 비단)과 저포전(苧布廛, 모시)이 각각 위치했으며, 종각역에서 동대문 쪽으로는 좌우양편에 선전(線廛)과 좌측 낙원동 일대에는 어물전(魚物廛, 생선)이 있었다.

종각역에서 광교에 이르는 도로의 좌측에는 저포전, 우측에는 면포전에 이어 지전(紙廛, 종이)이 줄지어 있었다. 광화문에서 종로3가까지, 그리고 광교 일대는 육의전 상가였고 육의전 조합인 도가(都家)는 서린동에 위치했다(조기준,'한국자본주의성립사론', 1973년, 247면).

이 지역의 상인들을 '종로상인'이라 일컬었는데, 이들은 비록 천민 대접을 받더라도 왕실에 어용품을 조달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했을 뿐 아니라 일제 치하에서는 민족의식도 강했다. 개항 이후 일본상인들이 종로 진출을 시도하였으나, 종로상인들은 단결해서 자기들의 상권을 굳건히 지켰다.

자기들끼리는 치열하게 경쟁하더라도 점포만은 절대 일본 상인들에 매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같은 종로상인들 덕분에 종로에 자리를 잡은 토착기업인 화신상회는 무사히 성장할 수 있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