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신백화점
'화신50년사'에 수록된 화신백화점 전경. /'화신50년사' 수록 사진

인수 4개월째 동아百 덜컥 오픈
미인계 유인에 박리다매 '맞불'
상품권 사은행사 대히트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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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박흥식은 화신상회를 인수와 함께 법인화하고 조직을 개편, 취체역 회장에 전 소유주인 신태화를 추대해 화신의 전통을 계승하도록 했다.

인재도 끌어모아 서무과장에 은행 지점장 출신의 이종건(李鍾建)을, 매입과장에는 방관책(方觀策)을, 영업과장에는 전매국 광양만염전 구매관 출신이며 선일지물 2대 지배인이었던 이기연(李基衍)을 기용해서 새 출발의 기틀을 마련했다.

노후된 목조 2층 건물을 3층 콘크리트건물로 증축하고 1층 도로변에 한국 초유의 최신식 쇼윈도를 설치했으며, 소비자의 기호와 수요를 고려한 상품별로 부서를 확장해 백화점의 모양새를 갖췄다.

회사의 상징인 로고도 현대감각에 부합하도록 새로 만들었다. '화(和)'자가 삽입된 원(圓) 주변에 4개의 꽃잎을 두른 것으로 '화'는 '화신'의 머리글자이면서 동시에 임직원들의 화목을, 둘레의 동그라미는 태양을 상징한다.

원(圓) 주위의 4개 꽃잎은 사방을 뜻하는 것으로 세계적으로 무한한 발전을 염원한 것이다. 이 상표는 화신그룹이 해체될 때까지 계속 사용했다.

그러나 직원들의 시간관념이 희박해 영업에 지장을 초래하자 고심 끝에 출근부를 비치했다. 당시 웬만한 상점에는 출근부가 없고, 설혹 출근부가 있어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아무리 출근부 날인을 지시해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후일 경찰 출신을 별도로 채용해서 점원 감독을 전담케 하는 등 우격다짐으로 겨우 기강을 잡았다.

점포의 영업시간도 문제였다. 한국인 중심의 종로상가는 예전부터 일정한 개·폐점 시간이 없었다. 날이 밝기 무섭게 문을 열고 야간에는 행인들의 발길이 끊어진 자정을 지나서야 문을 닫았다. (주)화신상회도 초창기에는 개·폐점 시간을 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잠이 부족한 점원들이 근무 중 졸기가 비일비재했고 심한 경우 가구부의 양복장에 숨어 도둑잠을 자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영업시간을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로 정했다. 또한 백화점 고객들은 일반시장 고객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대학졸업자를 직원으로 채용해서 매장에 배치하는 등 서비스 제고에 주력했다.

그 와중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화신상회 인수 4개월째인 1932년 1월 화신상회 동쪽 맞은편에 동아백화점이 문을 연 것이다. 일찍부터 현 파고다 아케이드 자리에서 동아부인상회(東亞婦人商會)를 운영해오던 최남(崔楠)이 민규식 소유의 4층 건물 2층을 임대해서 화신상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동아부인상회는 1919년 종로 2가 31번지에 자본금 5만원(圓)으로 설립돼 양품 잡화, 귀금속과 시계, 안경, 부녀자용 수예품 등을 취급했다. 최남은 서울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 추전광산(秋田鑛山)전문학교를 수료한 후 조선은행 행원으로 잠시 근무했다.

퇴직과 함께 덕원(德元)상회를 경영하다 동아부인상회를 설립했다. 그는 1920년에 종로구 관수동 20번지에 유흥음식점인 국일관(國一館)도 설립하는 등 종로 상인들 간에 사업수완이 뛰어난 사업가로 평가됐다.

동아백화점은 미녀 여사원을 대대적으로 모집해서 매장에 배치하는 등 미인계로 고객들을 유인했다. 화신은 선일지물에서 선보인 박리다매로 맞불을 놨다. 품질이 극히 우수한 상품을 가장 낮은 가격에 구입해 최저의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었다.

1932년 1월 일본 오사카 서구 인남통 3정목 소재 지하 1층 지상 3층 빌딩을 임대해서 대판사입부(大阪仕入部)를 신설하고, 각종 상품 메이커들로부터 공장도가격으로 직수입하기 시작했다. 매출액을 신속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경리부서에 레지스터 계산기도 설치했다.

6개월여의 치열한 경쟁에서 동아백화점이 백기를 들었다. 채용했던 미녀 점원 여러 명을 감독사원이 농락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다, 화신이 1932년 7월 10일부터 17일까지 전대미문의 현금교환이 가능한 답례용 상품권 증정 사은 대매출 행사가 히트를 친 것이다. 동아는 화신과 경쟁하느라 출혈이 심해 버티기 어렵기도 했다.

7월 16일 최남은 박흥식에게 동아백화점 일체를 양도하기로 결정함으로써 6개월간의 대혈전이 마무리 됐다. 박흥식은 화신상회와 동아백화점 건물 사이에 국내 초유의 육교를 가설해서 고객들이 양 건물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게 했다. 이로써 화신상회는 한국인이 설립한 유일의 현대식 백화점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