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공약 실현되기 위해선
시민들의 이해에 등 돌릴 수 있는
조건 갖추지 않았는지 살피고
이후엔 그들이 이를 지키도록
정치적 지지의 사회관계망을
지속적으로 가동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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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대학원장
실패한 대통령에 대해 지지자들은 "내가 이럴 줄 알았냐?"고 자조와 배신감을 토로한다. 다음 선거에 이르면 부정과 분노를 넘어서서, 좌절하는 이는 기권을, 타협하는 이는 유사하지만 다른 후보를, 수긍하는 이는 결이 다른 후보를 선택한다. 물론 완벽한 반대자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애초에 왜 그 정치인을 선택했는지, 이후에 왜 다른 선택을 하지 않는지는 불분명하고, 스스로 성찰하지도 않는다.

시민들은 지지한 정치인이 자신을 대표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민들은 계층, 성, 교육, 지역, 세대뿐만 아니라 시장적 지위, 문화적 성향, 종교적 신봉 등에서 다중적인 정체성과 이해관계를 갖기 때문에 정치인이 그 모든 요구를 알기도 수용하기도 어렵다. 또 정치인은 메이저시장에서 승자독식의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비슷한 다수의 경쟁자가 다툴 경우에는 틈새시장만으로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지만, 양자경쟁 상황에서는 테이크올(Take all) 전략을 취하기 마련이다. 요컨대, 시민들은 정치인이 자신을 대표한다고 믿지만 정치인은 모두를 대표한다고 말하는 모순이 존재한다. 선거가 끝나면 이 모순은 드러나게 된다. 정치인은 상대적 자율성을 지니게 되는 반면, 유권자들은 항상 조직되고 동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희망하기를, 시민유권자들은 자신들의 맹목적 기대에 매몰되지 않고 정치인들의 행위를 사전에 합리적으로 예측해야 한다. 사적유물론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사회적 존재조건에 따라 그 사회적 의식과 태도가 다를 수 있다고 믿는다. 정치인들이라고 다를까 싶다. 특히 선거 이후의 다소 자유로운 정치인들이라면.

언론은 정치인들에 대해서 인물, 정책, 정당 등을 판단기준으로 제시한다. 인물요인으로 도덕성 등이 거론되지만 앞서의 사회적 존재조건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정책요인으로 정치인의 상대적 자율성보다는 공약(公約)이 빈번하게 공약(空約)이 되고, 대통령 비서실장이 "선거캠페인과 국가운영은 다르다"고 말하는 현실에 주목한다. 정당은 정치세력과 그 지지자들로 구성되는 만큼 그 안의 개인들은 집단의 정치적 지향에 의해 제약되지만 그 제약이 집단적 이해관계 혹은 취향일 경우에는 심각해진다.

인물요인은 정치인이 자신(들)의 사회적 존재조건과 갈등하는 정치적 대표를 할 가능성이 약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특정 지역 출신의 정치인이 그 지역의 이해에 반하는 정책을 제안하고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상류층 출신의 정치인이 자산계급의 이해에 반하는 정책을 내려면 아웃사이더의 고독을 감수해야 한다. 강남좌파가 잘 보여주듯이 노동자 출신이 아닌 정치인들이 노동자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공약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특정 집단의 대표가 아닌 '전 국민의 대표'라는 모호한 표현 속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검사출신의 정치인이 검찰개혁을 하기는 상상하기 어렵다.

결국 정치인들이 공약한 정치적 대표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시민들의 이해에 등을 돌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않았는가를 먼저 살피고 이후에는 그들이 이를 지키도록 정치적 지지의 사회관계망을 지속적으로 가동시켜야 한다. 이와 달리 정치적 'XX빠'문화는 정치인들의 다중성과 유권자들의 '확증편향'이 결합하여 정치인들의 유권자 대표성을 그들 간의 권력경쟁에 종속시키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투키디데스의 말마따나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것은 헛된 희망에 의탁하고 그들이 선호하지 않는 것들은 그저 멀리 치워놓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다." 정책과 공약으로 위장한 정치인들을 그 본분에 충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그들을 선별하고 감시하는 데 있어서 훨씬 섬세하고 능동적이어야 한다.

웨렌버핏은 "인간이란 새로운 정보를 입에 맞는 대로 해석하는 것에 능통한 존재이다. 그들의 의견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의 이러한 '정해진 생각'은 흔히 신념이나 세계관으로 포장되지만 그 생각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결론지어졌다고 보는 것은 큰 착각이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보고 싶은 대로 보면서도 그 인식과 신념이 타당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관성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당신들의 생각은 게으른 뇌가 인지적 지름길을 찾으려는 착각일 수 있다.

/윤상철 한신대 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