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힘든 '사립' 운영 가능할지 고민
'등록증 반납' 엄포용 아닌 실현될까 걱정
올초 도내에서 사립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A관장을 만났더니 다짜고짜 "우리도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문화시설인데 사립(박물관, 미술관)이라고 해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일반 기업으로 행정기관이나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어 안타깝고 어려움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설립 주체가 개인이라 할지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설립되고, 그 설립취지에 맞게 운영이 이뤄지고 있다면 국공립과 동일한 지원과 혜택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립박물관이 국가적으로 보호돼야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콘텐츠의 다양성일 것이다. 국공립이 확보하지 못한 다양한 콘텐츠를 이들이 보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문화교육의 다양성을 키워나가는 역할은 그 중요성이 지대하다. 하지만 그 역할에 비해 현실은 싸늘하기만 하다. '개인이 만들었으니 어떻게든 개인이 살아남으라는 식'이라며 A관장은 아쉬움을 표했다.
얼마전 이 관장은 본의아니게 범법자가 됐다고 한다. 요즘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는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나들이 오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A관장은 박물관을 견학하는 단체도 많고 학생들이 땡볕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것이 안타까워 비가림막 시설을 설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행법(자연녹지법)에 어긋난다며 어렵게 설치한 천막은 철거되고 관장은 범법자로 전락했으며, 아이들은 땡볕과 비를 피할 공간을 잃었다. 관장은 운영의 의욕을 상실했다고 한다. 시설자체가 공익을 위한 시설로, 시민들에게 좀더 편의를 제공했다고 이런 상황이 된 것이 허탈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이밖에도 세제문제, 그린벨트내 박물관에 대한 규제 문제, 장애인시설 문제, 국민인식 문제 등 다양한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얘기 좀 담아 취재 좀 해달라고 제안했다.
얘기를 듣다보니 십여년전 사립박물관들을 찾아다니며 진행했던 시리즈 기사가 생각났다. 독자들에게 이색적이면서 한번 가볼만한 곳을 추천해보자는 취지의 코너였다. 하지만 취재를 거듭할수록 사립기관들의 처지에 안타까움만 커져갔다. '아, 이런 것을 보고 빛좋은 개살구라고 하는구나'하는 마음만 깊어졌다. 그때 만났던 관장들과 A관장이 하는 말이 강산이 한번 바뀌었을 시간이건만 그닥 나아진 것은 없어보였다. 오히려 심화된 듯 했다.
요즘 사립시설에 들어서면 관리자들이 조명을 켜주는 일이 많다. 무슨 말이냐면 이들은 운영비도 감당하기 벅차 대다수가 관람객이 없으면 조명 및 냉난방 시설을 꺼놨다가 관람객이 오면 시스템을 가동한다. 한 사람이 방문해도 박물관 전체 조명 및 냉난방을 해줘야 하는 상황에선 서로가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 현재 전기료를 교육용으로 할인해주고 있지만 큰 도움은 못된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이들에게 또다른 악재가 터졌다.
지난달 27일 경기도립 박물관·미술관 입장료를 전면 무료화하는 조례가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장 오는 9월 1일부터 도립 박물관·미술관의 입장료가 무료로 전환되는 것이다. 의결된 '경기문화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은 경기도어린이박물관(매월 첫째·셋째 주말만 입장료 무료)을 제외한 5개 도 박물관·미술관의 입장료를 폐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럴 경우, 도내 사립 박물관·미술관의 입지는 또다시 좁아질 수밖에 없다.
문득 A관장이 걱정됐다. 때마침 연락이 왔는데 "도립 박물관·미술관 입장료를 무료화하면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주 타깃층이라 할수 있는 단체 관람객이 축소될 여지가 많아 운영이 가능할지 고민이 크다"고 했다. 해당 조례가 안건으로 올라왔을 때 사립박물관·미술관 관계자들이 꺼내들었던 '등록증 반납'이 엄포용이 아닌 현실화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상생할 대안은 없는 것인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윤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