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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폭우와 장마는 고금에 변화가 없나. 고려 때 문신(文臣) 학자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 장마 묘사가 실감이 난다. '지루한 무더위 찌는 듯하더니/ 이제는 장맛비 그치지 않네/ 저자(시장)가 막히니 들 늙은이 걱정이 늘어가고/ 강물이 불으니 고기잡이배 어지럽구나/ 모기와 바구미는 창문과 책상에 깃들이고/ 개구리 청개구리 부엌에 들어오네…'라고 적었지만 그 정도 폭우와 장마야 별 거 아니다. '칠년대한(七年大旱)에 구년지수(九年之水)'라고 했다. 7년 가뭄에 9년 장마다. 그래도 인류는 살아남고 '노아의 홍수'가 다시 와도 방주(方舟)로 탈출하면 그만이다. 창세기 6~8장 등 구약과 신약 여러 곳에 언급된 걸 보면 노아의 홍수는 실제로 있었던 것 같다. 죄 많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150일간 비가 그치지 않았고 하나님이 설계, 노아가 만든 방주로 소수만이 탈출했다는 거다.

'6월 장마에 돌도 큰다'고 했다. 비를 계속 맞으면 돌조차 자란다니, 얼마나 시적(詩的)인 말인가.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라는 말도 있다. 입 속으로만 웅얼웅얼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그렇다는 거지만 도깨비 여울 건너는 걸 누가 보기라도 했나. 영어엔 '장마'라는 말이 따로 없지만 한·중·일 3국엔 장마 어휘가 다수다. 우리말엔 장맛비, 장림(長霖), 임우(霖雨), 적우(積雨), 구우(久雨), 황매우(黃梅雨) 등이 있고 霖자는 숲처럼 내리는 비의 상형(象形) 글자다. 중국엔 매우(梅雨:메이위), 음우(陰雨, 淫雨), 연음우(連陰雨) 등 다수고 '좌전(左傳)'엔 매림(梅霖), 임우(霖雨), 임림(霖霖), 임력(霖瀝)이라는 말도 있다. 일본엔 장우(長雨:나가아메), 매우(梅雨:쓰유 또는 바이우) 외에도 음력 5월에 내리는 장맛비라고 해서 '사미다레(五月雨)'라는 말도 있다. 梅雨는 매실이 익을 무렵에 내리는 비라는 뜻이다.

전국에 폭우가 내렸지만 '장마전선이 상륙했다'는 말도 흥미롭다. 戰線이 아닌 '前線'이다. 싸우러 오는 장마가 아니라 연례 행차로 지나가는 前線이지만 피해는 크다. 중국 후난(湖南)성, 장시(江西)성 등에선 강둑이 무너지고 7명이 숨지는 등 폭우 피해가 엄청나다. 우리 땅의 장마는 조신하게 행차하시기를 바란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