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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복싱 선수 매니 파퀴아오(39·필리핀)는 세계 챔피언 8체급을 석권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1978년 민다나오 섬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2살 때 소년가장이 됐다. 13살 때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다 가출해 마닐라로 갔다. 믿는 구석은 주먹 뿐. 삼촌이 가르쳐준 복싱이 밑천이 됐다.

1995년 프로에 데뷔, 1997년 플라이급 동양챔피언, 이듬해 세계 챔피언이 됐다. 체급을 올려 슈퍼페더급 챔피언이 돼 5차 방어전을 마치고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여기서 전설의 명 트레이너 프레디 로치를 만난 게 복싱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로치는 왼 주먹만 쓰는 그를 양손잡이로 키워준 인물이다.

같은 해 6월 IBF 슈퍼밴텀급 챔피언이 돼 연승 행진을 했다. 이후 안토니오 베레라, 에릭 모랄레스,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 등 멕시코의 경·중량급 간판스타 3인방을 차례로 때려누이며 슈퍼스타로 우뚝 섰다. 2008년 미국의 영웅 오스카 델라 호야와의 슈퍼매치는 그를 필리핀의 국민 영웅 반열에 올려놓았다. 워낙 덩치 차이가 나 필리핀 국민들조차 시합을 막았지만 실컷 두들겨 맞은 호야를 보다 못한 심판은 8회에 TKO를 선언했다.

파퀴아오가 지난 2일 무명의 제프 혼(29·호주)에게 충격의 판정패를 당했다. 3-0의 일방적 패배였지만 매니가 패배를 인정하기 힘든 시합 내용이었다. 심판들의 편파 판정에 홈 링의 이점도 작용했다. 매니는 즉각 이의를 제기하며 리턴매치를 강력 희망했다.

두 선수의 재대결은 성사될 수 있지만 파퀴아오의 시대는 다시 오기 힘들 것이다. 혼은 이날 두어 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끝까지 버텨냈다. 파퀴아오의 전성기라면 길어야 5회 이전에 끝났을 경기였다. 세월은 가고 선수는 추억으로 남는다. 미련을 버리지 못해 망가진 경우는 셀 수조차 없다. 아쉽지만 파퀴아오도 자신이 흘러간 과거가 됐음을 인정해야 한다. 링에 다시 서는 건 필리핀 국민들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지금 멈추는 건 고통이지만 영원한 국민 영웅으로 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홍정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