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줄이나 읽었다는 사람들이
멋대로 뱉는 말속에도 진실 있고
세상에 대한 판단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정부는 미래가 없다
어느 시대나 유념해야 할 일 아닐까
"정자는 장의사(藏義寺) 서편 기슭 우뚝 솟은 꼭대기에 있는데 청유리와 기와로 이었으며, 위아래의 횡각이 냇물을 수백 보나 걸터 타고 있는데, 모두 청유리 기와로 이고 내를 막아서 저수하였다. 산 안팎에서는 다 두견화를 심고 그 정자 이름을 탕춘정(蕩春亭)이라 하였다. 왕이 자주 거둥하였는데, 왕비 이하도 모두 말을 타고 따랐다. 이 때문에… 항상 말을 수천 필씩 길렀다."
연산 12년은 연산군의 재위 마지막 해였다. 그 정자 이름이 봄을 탕진한다는 것인데, 이것을 짓고 이제부터 한판 진짜로 즐겨보겠다 했건만 사실은 그해가 그의 마지막 해였던 것이다. 그는 중종반정(1506)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탕춘정을 지은 그의 뜻이 무색하게도 그는 정자를 지은 해에 세속의 영화를 잃고 인생마저 마감했던 것이다.
연산 12년 기록을 보다, 연산군이라는 인물에 대한 탐구욕이 어쩔 수 없이 일었고 그러다 보니 이제 연산군 재위 첫해의 기록부터 찾아보게 된다.
선왕이 세상을 떠나고 새 왕이 뒤를 잇자마자 신하들의 항소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요샛말로 하면 '군기잡기'인지도 모르겠는데, 이유인즉슨 새 왕이 세상 떠난 아비를 위하여 불교식 재를 지내려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것이 사단이 되어 해가 바뀌어 정월이 다 가도록 대신들, 간원들, 선비들이 난리가 났다. 어찌하여 유교 섬기는 나라의 제왕이 선왕의 뜻을 거스르고 왕조의 법통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불교에 기우냐 하는 것이었다.
그 중에 상소를 올리는 유생들이 있었는데, 그 말이 꽤나 극언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드디어 왕이 참지 못하고 죄를 주려 하자 이번에는 또 그것을 가지고 난리들이 났다. 그들은 유생의 극언 담긴 상소를 가리켜 '광망(狂妄)'이라 일컬으면서도 그것을 빌미로 죄를 주면 안 된다고들 했다. 그 중의 한 논리는 이와 같다.
"유생의 말이 비록 광망하고 경솔한 듯하오나, 옛사람이 이르기를 '말이 격절(激切)하지 못하면 임금이 귀를 기울이게 하기에 부족하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그 말을 격절하게 하고자 하여서 그런 것이요, 그 뜻으로 말하면 … 간하여 막으려던 것뿐입니다. 비록 평상시에 있어서도 오히려 가두심은 불가하온데, 하물며 즉위한 처음에리까. 국문하지 마소서."
또 다음과 같은 '광'자 해석도 나오는데 자못 그 뜻이 깊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광(狂)이란 것은 그 뜻이 크고 큰소리하는 것이라, 말이 도리에 맞지 아니하고 행위가 생각에 맞지 아니하나, 성인이 허여한 것은 대개 뜻이 커서 장차 진취하는 것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저 유자(儒者)는… 임금을 사랑할 줄 알되, 세상에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하니, 그 뜻을 힘씀이 유속(流俗)과 같지 아니하고, 그 말을 높게 함이 흔히 시의에 어긋나므로 바로 공자가 이른바 광이란 것인데, 적절히 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광이란 것이 충직의 기본이며, 준열한 말은 제 몸을 알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장차 국가에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에 새 정부가 서서 독단과 감시가 사라지고 새 기운이 세상에 번짐을 다행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되, '연산군 일기'로 인하여, 뜬금없이, 과거 정부가 어찌하여 그렇게 한 순간에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는지 새롭게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들의 말, 이언(邇言), 즉 항간에 떠돌아다니는 말, 그리고 책줄이나 읽었다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말하는 쓸데없고 부질없는 말들 속에도 진실이 있고 정부와 시대, 세상에 대한 판단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그 정부는 미래가 없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유념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한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