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속 조용한 머무름 어떨까?
적당히 쉰후 '다시 시작!' 해보자
진정 나에게 필요한 시간 보내며
무더위와 나를 귀찮게 하는 것들
내 주위에서 모두 도망가게 하자

이제 휴가철이 시작된다. 각자 떠올리는 '휴가'의 이미지는 제각각 다르고, 재충전하는 방법 또한 다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휴식은 나무 아래 앉아서 살살 부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좋아하는 그림책을 보는 것이다. '쉬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 '휴(休)'는 사람 인(人)에 나무 목(木)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쁜 일상을 떠나 자연 안에서 몸과 마음이 온전히 쉴 수 있을 때 비로소 휴식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힘을 생각할 때면 프랑스의 그림책 작가인 레미 쿠르종 걸작 '커다란 나무, Le Grand Arbre'를 떠올리게 된다. 어느 기업의 사장이 전용비행기를 타고 가다 내려다본 순간 반해버린 한 그루 나무, 그 나무를 옮겨가려고 돈과 인력을 동원하지만 결국 부자 아저씨는 나무를 옮기지 않게 된다. 오랜 세월 그 땅과 나무를 지키며 살아온 가난한 할머니의 삶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부자 아저씨는 할머니를 통해 알아간다. 나무를 통째로 옮겨가려다 다시 그 땅에 심어주기 위해 땅을 파보고, 땅을 덮어보고, 비를 맞아보고, 바람을 느껴보고, 햇살을 안아보면서 부자 아저씨는 자연과 친구가 된다. 자연 속에서 온전한 휴식을 맛본 것이다.
얼마 전 도서관 옆 산에 개인 집이 들어섰다. 산 중턱에 있던 아름드리나무들이 반나절 만에 다 없어졌다. 산 하나를 깎아 내고 나무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집을 짓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쉽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한 채의 집이 산에 지어진 후 최근 장마 동안 하늘에 구멍이 난 듯이 비가 내렸다. 예전에는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이제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빗물에 쓸려 흙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 '산이 온통 내려앉아 버리는 것은 아닌지…'. 비오는 밤에 청개구리가 엄마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울어대듯이 나는 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비로소 그동안 우리 곁에서 나무들이 묵묵히 지켜내 오던 많은 것들을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강화도에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을 개관하고 지낸 지가 4년째 접어들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만에 강화도는 여기저기 산과 논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집들이 들어서고 있다. 흙먼지와 매연을 뿜고 마을 안길까지 누비고 다니는 흙 차와 공사 차량들로 인해 해질녘 논길을 따라 걷던 낭만도 누릴 수 없게 됐다. 이러다 나무들이 모두 인간에게서 멀리 휴가를 가버리는 건 아닐까 심히 우려된다.
장자(莊子)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 모두를 덕으로 감싸주는 자연 속에서 /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뜻에 따라 살 때 / 참된 삶의 기쁨과 보람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왜 휴식(休息)을 갈망하는가?
매일 매일 잠이라는 휴식을 통해 다시 새로운 내일을 맞이할 수 있듯이, 온전한 휴식을 누린 후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휴식은 각자 다르다. 대야에 찬물을 가득 담아 두 발을 담근 후 내가 좋아하는 한 권의 그림책을 보는 것, 샘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나무 아래 누워 한 편의 시를 낭송하는 것, 계곡에 가서 발 담그고 차가워진 수박 나눠 먹기, 바다에서 수영 즐기기,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음악 감상하기, 산속 절에 머물면서 차도 마시고 새들과 이야기 나누기, 동네 한 바퀴 걷기, 교회나 성당에 가서 조용히 머물기, 시골 할머니 집에 가서 대청마루에서 책보다 뒹굴뒹굴 낮잠 즐기기 등… 우리에게는 다양한 휴식이 있다. 올여름에는 시끌벅적한 휴가가 아니라 자연 안에서 조용히 머물러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적절한 휴식을 누린 후 '다시, 시작!' 해보자. 진정 나에게 필요한 휴식을 즐기면서 무더위와 나를 성가시게 하는 그 어떤 것들도 도망가게 해보자.
/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