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담긴 단아함과 굳건함은
추사 도도하고 강건한 성품 아닌
유배 당할 수밖에 없었던 '풍파'
즉 세한의 계절 이긴 '불멸의 정신'
그 표현이 푸른 소나무·잣나무·집
긴 시간 극복한 숭고미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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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얼마 전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틈을 내 대정리에 있는 추사 김정희 유배지에 들렀다. 기념관에 들어서자 맨 먼저 추사의 세한도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 길에 올랐던 해는 1840년이었고 세한도는 유배된 지 5년이 되던 해에 그린 작품으로 추사와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우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걸작이다.

1844년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여름 날, 육지에서 보내 온 거질의 책이 추사에게 전해졌다. 제자 이상적이 만 리 밖 북경에서 여러 해를 두고 구해서 보내준 귀중한 책이다. 추사가 제주에 유배 온 지 어언 다섯 해, 한 때 생사를 같이하던 벗들도 이젠 소식조차 없던 터였다. 추사는 고마운 마음에 갈라진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발문을 썼다. 조선 문인화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세한도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얼핏 보면 세한도에는 제대로 그려진 사물이 없다. 단지 네 그루의 나무와 집 한 채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게다가 먹도 충분치 않고 붓도 부실한지 여기 저기 갈라진 붓 자국이, 화인(畵人)이 마주한 힘겨운 삶을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무슨 나무인지 분명하게 알아보기 힘든 왼 쪽의 나무 두 그루, 그리고 세부 묘사가 전혀 없는 집을 보면 기우뚱하기도 하고 대칭이 맞지 않아 허술하기도 하여 도대체가 사물을 제대로 관찰하고 그린 것 같지 않다. 마치 앞으로 더 가필해서 완성해야 할 그림이거나 아예 그리다가 흥취가 사라져 붓을 던져버린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이처럼 세한도의 풍경은 참으로 볼품이 없다. 그러나 바로 이 볼품없음이야말로 세한도가 담고 있는 '세한의 풍경'이다. 세한도는 어떤 면에서든 풍요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 벼루 열 개에 구멍을 내고 붓 천 자루를 닳게 했던 추사의 필력으로 한 글자를 쓰기도 어려운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 황폐의 끝에서 탄생한 작품이 세한도다.

세한도가 명작인 이유는 바로 이 그림 한 장에 그가 추구한 불멸의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추사는 이른바 '문자향(文字香)'을 강조했다. 따라서 추사의 그림을 감상할 때는 단지 눈으로 보이는 '그림'에서만이 아니라 문자의 향(香)이라 할 수 있는 '정신'을 보아야 한다. 다행히 추사는 그림과 함께 그림을 그리게 된 까닭을 발문에 자세히 써 놓았는데 그 발문을 통해 우리는 수 천 년 전부터 세한의 시련을 극복해 온 오래된 이야기와 마주할 수 있다.

'세한'은 날씨가 추워졌다는 뜻으로 본디 공자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모든 나무가 다 시들어버린 혹한의 계절에 소나무와 잣나무만은 여전히 푸름을 간직하고 있다. 공자는 이를 칭찬했다. 그런데 추사는 이렇게 묻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이나 날씨가 추워진 뒤나 똑 같은 소나무요 잣나무인데, 왜 공자는 유독 날씨가 추워진 뒤의 소나무와 잣나무만을 칭찬했단 말인가?

그리곤 스스로 이렇게 대답한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비로소 그 굳센 뜻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 이 굳센 뜻이야말로 추사가 추구한 불멸의 정신이었다. 지금 창 밖에 부는 세찬 바람도 저 멀리 달아나게 할 정신, 그 정신이 이 세한도에 있는 것이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지에서 감내해야 했던 세한의 계절은 곤궁이고 누추며 고독이었다.

세한도에 담긴 단아하고 굳건한 정신은 단지 추사의 도도하고 강건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유배당할 수밖에 없었던 세상의 풍파, 즉 세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세한의 계절을 이기고 난 이후에 생겨난 것이 흔들림 없는 '불멸의 정신'이다. 그 정신이 표현된 것이 세한 이후에도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 그리고 퇴락한 집이다. 이렇게 보면, 추사의 세한도에는 세한의 계절을 모두 거치면서도 그 시간을 이겨내고 극복한 숭고미가 담겨 있다 할 것이다.

우리의 삶에 추위가 온다는 것은 시련이다. 그러나 그 시련의 계절에 삶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무더위의 한가운데에서 잠시 세한도를 그려보았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