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은 조선의 26대 임금인 고종으로 전해진다. 고종은 궁중 다례의식에 커피를 사용했을 정도로 애정이 남달랐다. 그는 아끼던 은제 커피잔을 명성황후의 주치의이자, 정신여고 설립자인 벙커 부부에게 하사하기도 했다. 당시엔 커피의 발음을 음차해 '가배차' 혹은 '가비차'로 부르거나 '서양에서 들어온 탕'이라는 뜻의 '양탕(洋湯)'이라 불렀다.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서 일하던 독일 국적의 프랑스인 '손탁(Sontag)'의 소개로 커피를 처음 접하게 됐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과 좀 다르다. 1884년부터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알렌(Allen)의 저서에는 '궁중에서 시종들로부터 홍차와 커피를 대접받았다'고 기록돼 있으며,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의 보고서에는 1888년 인천에 위치한 '대불 호텔'을 통해 이미 커피가 일반인들에게 판매됐다고 적혀 있다. 또 1884년 미국의 천문학자 로웰(Lowell)은 그의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조선 고위 관료로부터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기록을 남겼으며, 유길준은 '서유견문(1895)'에서 커피가 중국을 통해 조선에 소개됐다고 밝혔다. 따라서 고종이 커피를 접한 것은 아관파천 이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고종은 자신이 사랑했던 커피로 인해 독살 당할 뻔했다. 아관파천 당시 통역을 담당했던 김홍륙은 1898년 고종의 생일인 9월 12일 관리 공홍식과 주방에서 일하던 김종화를 시켜, 고종과 태자(순종)가 마시는 커피에 아편을 넣게 했다. 그런데 냄새가 이상하다고 느낀 고종은 커피를 마시지 않았고, 태자는 커피를 마시다가 토하고 쓰러졌다. 태자는 중독 후유증으로 치아를 18개나 잃었다. 이 사건으로 김홍륙·공홍식·김종화는 사형을 당하고 김홍륙의 처 김소사는 곤장 100대와 3년간의 백령도 유배 형을 받았다.
'할리스', '카페베네' 등 국내 토종 커피 브랜드를 연이어 성공시키며 '커피왕'으로 불렸던 강훈 대표가 경영난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커피로 인해 성공가도를 달리다 결국 커피 때문에 유명을 달리한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김선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