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시대별 지지세력 존재
공동체 열망 형상화 대중 동원
포퓰리즘 '긍정적 효과'
정치·경제적 과도한 비용 소요
국가 거버넌스 위협 '문제점'
중간세력 동원·협치로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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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대학원장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이란 역사사회학의 명저를 남긴 베링턴 무어는 "부르주아지 없이 민주주의 없다"라고 썼다. 중세봉건체제에서 근대자본주의와 대의민주주의로의 출구를 열었던 부르주아지계급의 역사적 역할을 가리킨다. 케임브리지대학의 맑스주의 사회학자 괴란 테르본은 "프롤레타리아트 없이 민주주의 없다"라는 주장으로 노동자계급이 대의민주주의의 보편적 확장을 이끌었다고 설파했다. 이른바 '제3의 물결 민주화'의 끝자락을 경험했던 테리 칼이나 필립 슈미터 등 스탠포드의 정치학자들은 "국가(State)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말로 신생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경고했었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만들고 지탱케 하는 집단이 존재했다는 말이다. 정치세력은 그 집단들을 동원하고 대표하면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주조해냈다. 현존 민주주의체제 역시 지지세력의 사회적 힘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다. 그러나 지지세력의 요구와 희망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일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그 대중적 요구를 받아들이는 사회적 비용이 만만찮고 결과적으로 국가의 거버넌스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른바 적폐청산이 일상적 화두로 등장했다. 전략적 모호성을 거두어버린 사드 배치뿐만 아니라 세월호도 미수습자 문제의 해결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지지자를 부르던 대선 캠페인은 이제 그들의 허기를 채워줄 정책적 실행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탈원전, 최저임금인상, 전교조합법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특목고 및 자사고 폐쇄 등이 촛불혁명의 이름 아래 혹은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고 일부는 전격적으로 실행되었다.

매양 그렇듯이 모든 적폐는 양면적이다. 모든 제도는 일정한 사회적, 정치적 지지에 힘입어 유지되었기에 어떤 제도를 적폐로 규정하는 순간 이를 둘러싼 양 진영간의 대결은 불가피하다. 대통령선거는 표의 대결이었지만 선거 이후에는 말과 이미지, 그리고 여론의 대결이 된다. 명백한 우열을 확인할 수 없기에 포퓰리즘이라는 보다 넓은 범위의 강력한 대중동원이 필요해진다. 단순다수가 아닌 현저한 다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진영갈등의 외곽에서 뚜렷한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럼에도 포퓰리즘은 대중적 열망을 형상화하고 공동체의 의지를 조직하고 동원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유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퓰리즘은 정치체제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 포퓰리즘적 정치동원은 반대 진영에 대해 과도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그들도 고도로 정치화되고 동원된다. 정치적 반대압력이 집중되고 강화되면서 진영과 파벌의 논리가 심화된다. 지난 보수정부 9년은 개혁정부 10년의 협치없는 포퓰리즘에 대한 반사적 동원 혹은 역편향의 효과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과도한 비용이 소요됨으로써 국가의 거버넌스를 위협하게 된다. 즉, 포퓰리즘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파국을 예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포퓰리즘이 의회의 지형상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은 일견 다행스럽다. 물론 포퓰리즘적 위임민주주의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새로운 대통령권력이 가진 정당성의 우위에 근거하여 의회권력을 최대한 우회하고 대중적인 압력을 의회에 구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간세력들을 잘 동원하면서 반대진영과의 협치를 이끌어내고 동시에 국가재정위기나 자본의 저항과 같은 경제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낸다면 비정상적이면서 성공적인 체제로 볼 수 있다.

어쩌면 정권교체는 우파포퓰리즘 대 좌파포퓰리즘, 혹은 경제적 포퓰리즘 대 정치적 포퓰리즘의 경쟁과 갈등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분산되고 형해화된 대중적 정치열망들이 보다 다수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모아지고 조정된다고도 볼 수 있다. 그 격변 속에서도 국가의 거버넌스가 잘 유지된다면 사회발전의 필수적 경로일 수 있지만, 포퓰리즘의 행로는 결코 낙관적일 수 없고 극단적 파국으로 쉽게 침몰한다는 사실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

/윤상철 한신대 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