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간판등 문화수준 가늠돼
대형 초록색 도로안내표지판
담당기관·설치시기 '제각각'
'비효율적 점용' 가로경관 해쳐
체계·디자인 개선 필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길은 사람이나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로와 길의 차이를 굳이 전문가적인 견해를 빌려 말하자면 도로는 길의 물리적 공간 자체를 말하고 길은 그 공간에 담겨진 모든 것, 즉 사람의 활동을 비롯하여 가로변에 들어선 건물과 간판, 그리고 가로수, 가로등, 각종 표지판과 버스 승강장은 물론 가드레일과 소화전, 쓰레기통 등 우리가 길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장소라고 일컫는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어떤 도시가 매력적인가를 이야기할 때 그들은 도시의 어떤 특정 건물이 아름답다거나 음식 맛이 좋다거나 아니면 도시의 분위기가 좋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무엇보다 도시의 첫인상은 그 도시의 길이 결정해준다.
몇 년 전부터 도시전문가와 일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걷고 싶은 거리 만들기 운동을 펼쳐오고 있으며, 보행전용도로를 만들어 도시의 길을 보행자천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들이 도시들마다 열병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가로변의 건물에 부착된 크고 작은 간판들도 옛날과 달리 컴퓨터그래픽의 도움과 조명기술의 발달로 제법 산뜻하고 멋지게 단장하여 과거의 가로경관을 혼란스럽게 만든 원흉(?)의 오명을 씻어가고 있다. 이렇듯 지방정부나 시민들 모두가 그들이 사는 도시나 동네의 길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계속해나가고 있지만 유독 한 가지, 도시의 간선가로에서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초록색의 대형 도로안내표지판이 가로경관을 해치고 있음을 아는 시민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도시교통정보를 빠르고 편리하게 전달하기 위해 지방정부와 경찰청에서 많은 비용을 들여 전국의 모든 간선도로에 교통표지판을 설치해오고 있다. 교통표지판은 도로안내와 안전, 그리고 각종 규제를 위한 표지들이며, 몇 년 전부터 제법 산뜻한 디자인의 도로명 표지가 가로에 걸려있다. 이들은 담당기관이 서로 다르고 설치시기가 같지 않아 별도의 계획과 설계에 따라 설치되기 때문에 때로는 가로공간을 비효율적으로 점용하여 보기에도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요즈음처럼 최신의 디지털기기에 의존한 시대에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나 걸어서 집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대다수가 내비게이션이나 구글맵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도로안내표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사실 소용이 없어져버린 셈이다.
뉴욕이나 런던, 파리는 물론 선진국의 유명 도시의 가로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대형의 도로안내표지판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 도시에는 교차로마다 교통신호등과 함께 도로명 표지가 설치되어 있을 뿐이다. 그 동안 공직자들이나 정부의 관료들이 뻔질나게 선진국을 드나들며 연수와 출장을 다녀와도 어느 누구 한 사람 우리나라의 도로안내표지판이 가로경관의 질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그리고 시민들이나 방문객들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고 있는지 관심을 가진 적이 없는 것 같다. 정부에서는 이제라도 도로교통안내체계의 개선과 함께 도로안내표지판을 제거하고, 필요 이상으로 설치되어 있는 각종 표지판의 수량을 줄이고 가독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 가로환경을 개선하고 가로경관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길 바란다.
/양윤재 대우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