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오픈 불참 딸 졸업식 선택' 한국선 가능할까
일·가정 양립지원제, 근본적 인식변화 못이끌어
모든 일은 가정에서부터 비롯돼… 꼭 실현돼야


이윤희 문화부장
지난 6월 미국의 최정상급 프로골퍼 필 미켈슨은 딸의 고등학교 졸업식 참석을 위해 US오픈 불참을 선언했다. 미켈슨에게 이번 대회는 큰 의미를 갖고 있어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던 터였다. 골프의 '커리어그랜드슬램(Career Grand Slam)'으로 불리는 4대 메이저대회에서 그는 마스터스 대회(3승), PGA챔피언십(1승), 브리티시오픈(1승)의 우승은 거머쥐었지만 US오픈은 번번이 눈앞에서 우승 기회(6번의 준우승)를 놓쳤다. 그래서 그에게 올해 US오픈은 그랜드슬램 달성을 위한 마지막 관문이자 설욕의 기회로 의미가 컸다.

하지만 그는 골프보다 가족을 택했다. 가족이 먼저였다. 미켈슨은 불참소식을 전하면서 "훗날 내 인생을 돌아본다면, 내가 졸업식에 참석했다는 것을 언제나 기뻐하고 소중히 여길 것이다. 부모로서의 기쁨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만약 미켈슨이 한국사회에서 이런 결정을 했다면 어땠을까. 긍정의 시각도 있겠지만 부정적 시선도 무시 못했을 것이다. '지금 제정신이야,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딸 졸업식 때문에 도전 기회를 미루다니. 아직 절실하지 않은가보군'이라고 반응하지 않았을까.

일(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돼 제도화된 지 올해로 10년이 된다. 지난 2007년 12월 남녀고용평등법의 법제명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로 변경되면서 제도화됐다. 이후에도 법은 몇 차례의 개정을 통해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규정이 추가되며 확충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법의 취지와는 달리 그다지 사회의 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일·가정 양립을 위해 정부의 다양한 지원책과 캠페인도 이어지고 있지만 근본적인 인식변화는 정부의 의지 대비 지지부진해 보인다.

더욱이 새 정부들어 각종 고용정책이 급변하고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면서 일·가정 양립이 우리사회에서 근본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하는 의문마저 들게 된다. 정부는 지난달 노동계와 협상을 통해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6.4% 인상된 7천530원으로 결정했다. 이에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들고 나섰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달 소상공인 사업주 532명을 대상으로 '최저임금 인상 관련'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이번 결정으로 소상공인 10명중 9명이 종업원을 감축할 계획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종업원을 감축하면 상당수는 영업장 유지를 위해 사장이 종업원 몫을 감당하게 된다. 실제 조사결과에서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본인의 근로시간이 늘어날 것'을 예상한 비율은 91%였다. 과연 이들에게 정부가 말하는 일·가정 양립이라는 게 가능할까. 현재 국내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9월 기준으로 568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매년 꾸준한 증가 폭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상 이들은 일·가정 양립의 소외층이라 할 수 있다.

정부에서 추진 중인 캠페인 중 '일家양득'캠페인이 있다. 일과 삶의 균형으로 일도 생활도 즐겁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개선해 근로자가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면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아간다는 취지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일반 직장인들은 격무에 시달리고 그런 캠페인은 정부나 공기업, 대기업에서만 가능하다 생각한다. 그나마 초창기 직장의 눈치를 보느라 저조했던 남성 육아 휴직자수가 매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고용노동부가 올 상반기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의 남성 육아 휴직자 수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52.1% 늘어난 5천101명이라고 한다. 연말까지 1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남성 육아 휴직자 수가 2016년 7천616명, 2015년 4천872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가파른 증가세다.

일·가정 양립은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꼭 실현돼야 한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결국 모든 일은 가정에서부터 비롯된다.

/이윤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