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도나도 모두가 해외로 바다로 산으로 떠나는 2017년 여름휴가도 처서와 말복이 양쪽에 걸터앉은 금주가 피크다. 하지만 '피크'라는 건 휴가가 긴 나라엔 없다. 유럽 북부 발트 해의 리투아니아와 남미 브라질은 40일, 축일까지 끼면 41일이고 러시아, 핀란드도 40일씩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30일, 미국과 싱가포르 25일, 중국도 3주일, 캐나다도 19일이다. 그리도 길면 지루하지 않나? 아무튼 휴가철엔 유럽 대도시들이 텅텅 빈다. 하긴 '바캉스(휴가)'라는 말의 본고장인 프랑스의 vacance나 독일어 vacanz, 영어 vacation이 모두 '비었다(vain)'는 뜻의 라틴어 vanus에서 왔다. 역대 로마 교황부터 로마를 비우고 가톨릭 사제들도 2주 정도 휴가를 떠난다. 승려들도 그 길고긴 하안거(夏安居) 칩거가 휴가나 다름없다. 국가원수들도 솔선수범(?) 떠나고.
만능 스포츠맨인 러시아 푸틴은 이번 여름에도 근육질 상체를 노출한 채 잠수복 차림으로 물고기를 잡거나 수상보트를 즐긴다. 골프광 트럼프는 별장 골프장이 단골 휴가지고 올해도 17일간의 골프장 휴가 중 백악관은 냉난방 시설 등 대대적인 보수공사 중이다. 독일의 메르켈은 매년 단골 코스인 독일 남부 산악마을의 음악축제를 즐기고 중국 정치 거물들의 공통 휴가지는 허베이(河北)성 북동쪽 친황다오(秦皇島)시 해안 휴양지인 베이다이허(北戴河)다. 1954년 마오쩌둥(毛澤東)을 비롯해 중국 특유 원로정치가 관철되는 곳이 베이다이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매년 거기서 수영을 즐겼고 시진핑도 단골이다. 일본의 아베는 아직 휴가를 못 갔다. 모 학교법인의 권력로비 연루 의혹으로 지지율 급락에다가 그저께 히로시마 원폭(原爆) 72주년 추모제에선 '아베를 감옥에 보내라!'는 시위대까지 맞닥뜨렸다. 그의 개헌 드라이브도 제동이 걸릴 판이고….
AP통신은 지난달 말 문재인 대통령의 휴가를 언급했다. 북한의 2차 ICBM 발사로 세상이 시끄럽긴 하지만 일중독의 한국인들은 휴식을 권장 받을 만하다는 거다. 하지만 안보가 위태로운 판에 그리도 태연자약 휴가를 즐길 수 있다는 건가. 어제 오전 트럼프와의 장장 56분간 통화도 내용이야 뻔했을 거 아닌가.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