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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조선'이니 뭐니 멀쩡한 나라를 지옥이라고 매도하는 악질들도 있지만 죽어서 간다는 지옥을 죽기 전에 체험해본 사람도 있을까. 있다. 있어도 다수다. 폭염에 정전이 된 아파트 주민이다. 지난 6일 밤 부산 사상구 주례동의 한 아파트 단지가 정전, 1천206가구가 겪어본 게 다름 아닌 이승의 지옥이었다. 그날 사상구는 37.6도였고 승강기 5대도 멈춰버려 17명의 입주민이 1시간 20여분이나 감금당했다는 거다. 그 1시간 20여분 승강기 속이 얼마나 뜨거웠을까. 그런 곳이 불교에서 일컫는 8가지 뜨거운 지옥인 이른바 '팔열지옥(八熱地獄)' 중 한 곳이었을 게다. 선풍기 하나 못 돌리고 고층 층계를 걸어서 오르내리는 심장들이라니! 같은 날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 아파트 단지도 장장 3시간 45분 정전이 됐고 일산 서구 주엽동, 청주시 내수읍,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아파트도 전기가 나가버렸다.

정전사태는 7일 밤에도 벌어졌다. 다른 곳도 아닌 서울 강남이 뽐내는 도곡동 타워 팰리스 1차 4개동 1천300여 가구가 캄캄한 지옥이 돼버렸다. 탑 궁전인 타워 팰리스가 아니라 '탑 헬'이 돼버린 거다. 같은 날 오피스텔에서도 전기가 끊겼다. 대구 침산동 22층 오피스텔에서 2시간 40분 전기가 외출해버렸다. 그날(입추) 대구는 37.2도로 살인적이었다. 경기도 시흥 오피스텔 수백 가구도 정전이 됐고…. 이름이야 그럴싸한 행정'안전'부지만 그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이 지난 주말 집계한 전국 정전 가구는 무려 5천여 가구였다. 원인이야 늘 같다. 노후 변압기를 미리, 제 때 교체하지 않은 탓이다. 그렇다면 한전은 뭘 하고 있고 행정안전부는 또? 행정안전부가 아니라 '행정불안전부' 아닌가. 저승도 가기 전에 미리 한겨울 '팔한지옥(八寒地獄)'과 한여름 '팔열지옥'을 체험토록 할 참인가.

땅속 지옥이야 보나마나 전기가 없겠지만 천당이라면 어떨까. 천당(天堂)이라는 글자 뜻은 '하늘 집'이다. 그렇다면 거기도 밤이면 환하게 전기가 켜지는 거 아닐까. 전기 나간 천당은 결코 천당이 못될 게다. 아파트에 살지 않는 사람까지도 화가 치민다. '달굴 연'자 연옥(煉獄), 단테의 지옥을 미리 체험시킬 필요까지야 없지 않은가.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