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실손의료보험의 '무용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기존 가입자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건강보험이 그동안 보장해주지 않았던 비급여 항목이 급여화돼 의료비 부담이 줄어든 덕분에 굳이 보험료를 내가며 실손보험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단 정부 정책이 진행되는 추이를 보고 해약 여부를 판단해도 늦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12일 정부에 따르면 건강보험에서 의료적으로 필요한 비급여 항목이 2022년까지 급여화된다.

비급여는 국민건강보험법상 건강보험이 비용을 부담하는 급여 대상에서 제외된 항목을 가리킨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면 대체재 관계에 놓인 실손보험의 보장 영역이 줄어든다.

실손보험은 비급여 진료비와 급여 진료비 중 본인 부담금을 보장해주는 보험상품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번 대책 발표로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기존 보험을 유지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일단 정부 정책이 가시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라고 충고했다. 정부 정책이 앞으로 수년간 단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바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다.

또 의료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정부가 발표한 대로 보장 영역이 확대될지도 미지수다.

당장 실손보험이 해약했다가는 건강보험이 보장해주지 않은 질병에 걸렸을 경우 막대한 의료비를 내야 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 특히 고령자가 이런 '보험 공백'에 빠질 우려가 크다.

정부 대책을 보더라도 실손보험이 담당하는 영역이 대폭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일단 3천800여 개 항목을 예비급여화해 비용 효과성을 평가하고서 결과에 따라 전면 급여화할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때 예비급여 항목은 본인 부담률이 50%, 70%, 90%로 차등화된다. 본인 부담률이 90%라는 것은 본인이 의료비의 90%를 부담하고 건강보험에서는 10%만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실손보험이 파고들 여지가 그만큼 크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사회안전망연구실장은 "정부가 비급여를 없앤다고 하지만 한동안 예비급여로 잡아놓고 평가하는 동안 예비급여 항목의 본인 부담률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예상돼 그런 부분을 보장하는 실손보험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낫다"라고 말했다.

실손보험이 표준화되기 이전인 2009년 10월 이전에 실손보험에 가입한 이들이라면 보험을 유지할 필요성이 더 커진다.

표준화 이전 실손보험은 입원은 자기부담금이 아예 없고 통원은 회당 5천 원만 내면 돼 유지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표준화 이후 상품은 고객이 입원에 따른 의료비 중 10% 또는 20%를 부담해야 한다.

실손보험료가 장기적으로 인하할 가능성이 있는 점도 기존 보험을 유지해야 할 이유 중 하나다. 실손보험은 대개 1년 단위 갱신형 상품이어서 보험료가 매년 새로 책정되기에 이번 대책으로 보험료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병원을 자주 가지 않은 이들이라면 이번 대책이 마무리되는 2022년 이후에는 실손보험을 굳이 보유하고 있을 이유는 없다.

실손보험료는 지난해 40세 남성 기준으로 월평균 1만9천429원으로 부담이 크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문자 그대로 실손보험 부분에 해당하는 보험료다. 실손보험은 대개 다른 보험에 부가된 특약으로 판매되고 있어 가입자가 실손보험 혜택을 받으려고 지불해야 할 보험료는 대개 5만 원이 넘어간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된 상황에서 건강한 이들이 건강보험료에 추가로 실손보험료를 낼 이유는 없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고 싶다면 올 4월에 나온 신(新) 실손보험에 가입하면 된다.

신 실손보험은 기존 실손보험보다 보험료가 싼 데다가 종전의 종합보험 형태가 아니라 단독형 상품이어서 가입자가 내야 할 보험료 부담이 훨씬 적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신 실손보험은 필요하면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도수치료, 주사제 등을 특약으로 넣어 보장받을 수 있어 적은 보험료로 원하는 보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