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36년 압제(壓制)로부터 해방, 광명을 되찾은 1945년 8월 15일 그 날의 기쁨이 어떠했는지는 노래가 증명한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는 광복절 노래부터 그 환희의 무게를 증명했고 이어 쏟아진 노래들도 그 흔희작약(欣喜雀躍)의 부피를 말해줬다. '사대문을 열어라 인경을 쳐라/ 삼천리 곳곳마다 물결치는 이 기쁨…(사대문을 열어라)'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 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 깃발을/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귀국선)' '은 마차 금 마차에 태극기를 날리며/ 울어라 은방울아 세종로가 여기다…(울어라 은방울)' 등. 그러나 3천리 곳곳마다 물결치던 기쁨은 이내 두 토막으로 잘려버렸다. 그 또한 일제 탓이다. 한반도가 일제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2차대전 종전 후 연합군의 한반도 처리 과정에서 '분단'으로 결정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초의 제의일지 모르지만 '광복절'→'복광절(復光節)'로 바꿔야 한다. 복교(復校) 복학(復學) 복습(復習) 복간(復刊) 복권(復權) 복고(復古) 복귀(復歸) 복구(復舊)…처럼 復자가 먼저기 때문이다. 언어 구조의 순리가, 합리가 그렇다는 거다. 일본어엔 '光復'이라는 말도 없다. 우리 8·15 광복절이 그들에겐 패전기념일이다. 미국이 사상 최초로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에 원폭을 투하, 2차대전 종지부를 찍은 그 히로시마(廣島) 나가사키(長崎)엔 평화 기념공원이 세워졌지만 사실상 '패전 기념공원'이다. 그런데 그 히로시마 5만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일본 정당 대표가 지난 6일 처음으로 헌화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가 소속 의원 20여명과 함께 꽃을 바쳤다는 건 엄청난 변화다. 한·일은 동맹국 아닌가.
문제는 북한이고 우리 내부다.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인정하지 않는 무리다.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 13일이 건국일이라는 주장이다. 그들은 대한민국 건국과 부흥, 전 세계가 찬탄한 한강의 기적도 부정한다. 깡패 범죄 국가로 전락한 북한도 어처구니없지만 그런 북녘을 향해서는 고요하기 그지없는 촛불 정신도 문제다. 광복절이 서글프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