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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고2 때 일이다.

반(斑) 친구가 시도 때도 없이 '엄마야, 엄마야'라고 해 웃음을 샀다. 그가 내지르는 '엄마야'는 경박한 고음이어서 더 거슬렸다. 1979년 하반기 출시된 조용필의 새 히트곡 '고추잠자리'의 후렴구라는 걸 얼마 뒤 알았다.

'가왕(歌王)'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수록된 음반에는 '단발머리'란 곡도 있다. 경쾌하고 빠른 리듬에 특유의 가성이 더해져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로 시작되는 대중가요에 이 땅의 청춘들은 열광했다.

이후로도 세기를 넘어 사랑을 받아온 '단발머리'가 영화 '택시 운전사' 초반부에 등장한다. 택시 운전사로 분한 배우 송강호는 경쾌한 리듬에 맞춰 가사를 따라 부른다.

영화에서 그가 운동가도 아닌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건 80년대를 대표하는 대중가요라는 점에서 적절해 보인다. 앞서 발표된 혜은이의 '제3 한강교'가 종반에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게다. 50대 이상 장년층은 이 장면을 보면서 '서울의 봄'과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상징되는 80년대 초반 격동기를 떠올릴 것이다.

고교 시절, 동급생 모두 해바라기가 되는 단발머리 소녀가 있었다. 배우 황신혜(예명) 씨다.

그가 다닌 인천학교의 여고생들은 까만색 동복에 리본을 단 흰색 하복을 교복으로 입었는데, 모두가 단발머리를 했다. 그도 같은 교복에 같은 머리였는데, 눈에 확 띄는 미모였다. 날씬하고 늘씬했다. 큰 눈에 시원시원한 서구적 이미지로 남학생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마침 집이 모교 뒤여서 어쩌다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 그가 오가는 길목에 자리한 분식집은 저녁 무렵에 장사가 더 잘 됐다. 황신혜 프리미엄이다. 20대 초반 TV 브라운관에 데뷔하고 뜰 무렵 들렀다는 인천 신포동의 나이트클럽이 한동안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40년 가까운 풍상(風霜)이 지났다. 여배우는 사춘기 지난 딸을 가진 주부가 됐다. '~못 잊을 그리움 남기고,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라'. 경쾌한 리듬의 '단발머리'가 왠지 쓸쓸해졌다.

/홍정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