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호소하는 국민여론
성범죄·양심적 병역거부등
헌법과 기본권속 깊은 고민
변화하는 사회 경고메시지
반면 법관들이 여론을 너무 의식해 등 떠밀리듯 판결하는 것이 오히려 사법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성범죄자에 대한 집행유예 처분. 법 감정과 동떨어진 유무죄 판결에 대한 반발 여론이다. 일선 판사들은 피해자와의 합의, 가정환경, 기타 개선 여지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결을 내린다고 하지만 이미 여론은 법원에 차갑게 등을 돌린다.
이는 '안전', '여성'을 중요시하는 사회로 점차 변화하면서 법이라는 잣대만을 들이대는 법원의 판단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 경우다.
'유전무죄'라는 국민의 인식이 여전하다. 최근 인천지법 부장판사에게 고급 외제차 등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항소심에서 뇌물죄는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관련해서도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는 동떨어진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국정농단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기각 여부가 생중계되고 결과에 따라 판사에 대한 비판과 찬사가 엇갈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선 판사들은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판결은 어렵다'고 말한다. 피해자와 피고인이 있는 상황에서 누구에게든 불만족스러운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판사들은 사회적인 주목을 받은 사건의 경우 관련 기사나 인터넷 댓글을 아예 보지도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자신의 판결이 외부 요인에 영향받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다만, 법률에 의한 판결이 법원 내부에서도 어떤 가치를 중점에 두느냐에 따라 엇갈리고 있다는 점은 사법부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병역법 위반 사건의 판결이다. 이 경우 하급심에서 유·무죄의 판단이 종종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인천지법에서도 종교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A(22)씨가 1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는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이 일관되게 유죄 판결을 내리기는 하지만 휴전 상황에서의 국민의 의무와 헌법이 정한 양심의 자유 사이에서 일선 판사들의 고민이 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주목을 받았던 개 전기도살 무죄 사건이나 자궁 내 태아 사망에 대한 산부인과 의사 과실 인정 판결 논란은 '동물복지'와 '사회적 관습', '의사의 주의의무'와 '인간으로서 의사의 한계'라는 가치가 대립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1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99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듯이 법관의 판결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때론 국민의 법 감정을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맞다"며 "오죽하면 판결도 '알파고'에게 맡기면 어떻겠냐는 말까지 나오겠느냐"고 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