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정치참여 제한 배제
대의 민주주의 모든 정책 방해
국민을 우중으로 바라보거나
그들만의 정치로 독차지하려 해
권리는 이런 왜곡과 맞서야 가능
정치적 발전단계에서 볼 때 대의민주주의는 전제적 통치를 벗어나 보편적 통치 체제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정치철학자들이 현대 민주주의의 한계를 비판하거나, 심지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발언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비판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대의 민주주의를 정당화하는 정치철학은 재현의 정치에 기반한다. 재현이란 철학적 관점에서는 본질세계에 대한 것으로, 종교적으로는 신적 존재의 제의적 도래란 특성을 지닌다. 정치적 관점에서는 시민의 권리와 의사를 그들의 대표에게 위임하여 행사한다는 원리에서 이해된다. 현대 세계에서 상징과 이미지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재현의 위기 문제가 중요한 담론이 되기도 한다.
대의민주주의는 시민의 정치적 의사를 올바르게 재현하지 못할 때 치명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선거 과정에서 시민의 권리를 위임받으려는 이들은 시민의 정치적 의사를 재현하는 정책들을 제시한다. 이 정책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시민의 권리를 재현한다는 공적 약속이며 의무적 특성을 지닌다. 이는 문서로 맺은 계약은 아니지만 대의 민주주의의 핵심인 재현을 완성하는 공공성을 지닌 약속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 지금까지의 정당정치에서 언제 이런 공적 계약을 정당하게 지킨 정당과 정부가 존재했던가? 이런 부재의 경험들이 촛불집회로, 또는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이런 공적 계약과 재현의 원리를 배반한 이들이 이제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대통령의 정당한 인식을 왜곡하고 비판하고 거부한다. 그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원리를 정면으로 저버렸던 인사들이 아닌가. 독재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그들만의 독점적 특권을 누렸던 이들은 누구였던가. 지난 정부에서 전직 대통령이, 여당 대표였던 이가 공공연하게 "선거 과정에서는 무슨 말인들 못하나"라고 외치거나 공약에 속는 사람이 바보라는 인식을 내비치지 않았던가. 그들이 말하는 대의 민주주의는 우리를 4년에 딱 하루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 뒤 나머지 시간동안 자신의 권리에서 배제당하는 체제에 묶어두려는 정치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중을 개돼지로 보거나, 아줌마로 폄하한다. 그들만의 리그로 가급적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제한하고 배제한다. 비례대표제를 제한하거나, 선거구를 조정하라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권고를 애써 무시한다. 대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운영할 모든 정책을 가급적 방해한다. 선거연령 하향 조정을 무시하고, 선거과정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시한 기회를 최대한 제약한다. 대의 민주주의라 쓰고 그들만의 정치라고 읽는다.
지난 25일 조선일보는 직접 민주주의를 말하는 대통령을 향해 "국민을 앞세운 제왕적 대통령", "지지율 독재"라고 비난하고, 이제껏 이어오던 관행을 거부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을 앞세우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닌가. 지난 관행을 그들 스스로 적폐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들의 독점적 특권을 보장했던 그 관행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운 모양이다. 한국 기득권층은 여전히 국민을 통치해야할 우중으로 바라보거나, 그들만이 정치적 권리를 독점하려 한다. 시민의 권리와 자유는 이런 왜곡과 독점에 맞설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