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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과 함께 국어사전에 올려야 할 속어가 '갑질'이다. 그런데 상관, 상사, 고용주 등 갑들의 폭언과 횡포가 갑질이라면 갑은 1등, 을은 꼴등인가. 그게 아니라 A, B처럼 갑 다음 을은 2등이다. 갑을병정 갑자을축이고 군 입대 신체검사의 갑종합격과 옛 과거(科擧)의 갑과(甲科) 급제(합격)가 1등 합격이라면 을종합격 을과급제는 2등이다. 순서와 순리가 그렇다. 그래서 일이 제대로 안되고 순서가 뒤바뀌는 걸 가리켜 '갑자을축'이 아닌 '을축갑자'라고 하지만 아무튼 갑 바로 밑인 을에게까지 갑질을 해대는 건 갑뿐이다. 중국에서도 乙等(이덩)은 2등, 乙級(이지)은 2급이지만 별난 건 A형간염이 甲肝(갑간), B형간염이 乙肝(을간)인 건 그렇다 쳐도 짐승의 발톱은 甲爪(갑조), 일본뇌염은 乙腦(을뇌)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웃기는 건 또 일본에선 목소리가 날카롭고 드높은 걸 '갑으로 높다(甲高い:칸다카이)', 손등 발등이 튀어나온 걸 '甲高(코다카)'라고 하면서 乙女(오토메)는 소녀, 乙姬(오토히메)는 '용궁의 미녀(龍女)'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어쨌든 가정이든 사회조직이든 상하관계 주종(主從)관계 종속(從屬)관계 노사관계로 얽히게 마련이고 어느 정도 상명하복은 필수다. 그래야 질서는 유지되고 조직은 안정된다. 다만 정도를 벗어난 무리하고 불합리한 상식 밖의 갑질이 문제다. 그런 저질 갑질 행태가 '갑질 문화'로 정립될 수는 없고 '갑질+문화' 결합 자체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어느 4성장군의 공관병(公館兵) 갑질을 언급하면서 "갑질 문화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뭣보다 무서운 건 권력 갑질이다. 적폐 청산 1순위가 바로 권력 갑질이다. 삼성의 돈도 뺏고 이재용 부회장을 감옥에 넣는 권력 갑질, 그 이름(在鎔)처럼 '녹여 버린' 짓이 그렇다. 현 정권도 다를 바 없다.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시시콜콜 죽은 정권 무덤을 파헤치는 갑질 행태가 얼마나 한심한가. 더구나 태극기집회자까지 내란선동 혐의로 수사한다는 거다. 그럼 내란음모죄 이석기도 '양심수'라며 석방하라고 외친 촛불집회도 수사해야 형평성이 맞지 않는가.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