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시간 빠듯 도시락 때워
배차 맞추려 과속운전 유혹
응원벨 해피버스 도입불구
열악한 근로여건 개선 절실
인천시 버스기사들이 식사·휴식시간조차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어 근로여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천에서 8번 시내버스(준공영제 간선) 기사로 일하는 박달수(55)씨는 5일 오전 9시께 두 번째 운행을 하면서 기점인 인천대 공과대학에서 출발하지 않고 15개 정류장 뒤인 동막역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인천대 공과대~동막역 정류장 사이에서 기다리는 승객들은 영문도 모른 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렸지만 박씨에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박씨는 이날 새벽 4시 40분께 연수구 동춘동 차고지로 출근해 6㎞ 떨어진 기점에서 첫 운행을 시작했다. 인하대와 인천시청 등을 거쳐 부천 송내역까지 갔다가 다시 종점인 인천대 공과대로 돌아온 시각은 오전 8시, 차고지인 동춘동으로 갔다가 차량검사를 받고 가스 충전을 하니 어느새 8시 30분이 됐다.
두 번째 운행 시작 시간인 8시46분까지 인천대 공과대학으로 돌아가면 아침밥도 챙겨 먹지 못하는 상황.
박씨는 결국 아침을 간단히 먹고 차고지에서 가까운 동막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도 마찬가지다. 기사들은 휴식 시간인 55분 안에 기점에서 왕복 30분 거리에 있는 차고지에서 밥을 먹고 쉬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부 기사들은 새벽 4시께 미리 아침밥을 먹고, 모든 운행을 마친 2시께 점심을 먹는 상황이다. 퇴근 시간이 겹친 저녁에는 차고지 왕복 시간이 빠듯해 버스 안에서 도시락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7년 경력의 한 8번 버스 기사는 "차고지가 아닌 가까운 식당에 가려면 개인 돈을 내고 먹어야 한다"며 "쉬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무작정 빠르게 달릴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인천시에는 195개 노선에 2천324대 버스가 다니고 있지만 이중 기점이나 종점과 차고지가 따로 있어 식사·휴식 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노선은 100곳 이상이다.
종점이나 기점에서 쉬고 싶어도 간단한 식수대나 간이 화장실조차 없는 곳이 많아 제대로 휴식을 취하기 어렵다. 특히 왕복 운행시간이 5~6시간에 달하는 13번 버스(379분)와 46번 버스(337분)는 기점이 청라국제도시역, 단봉초등학교인데 도로에 차를 세울 곳조차 마땅치 않다.
휴식은커녕 '만원버스'에 시달리는 노선도 있다. 지난해 시는 노선 조정을 하면서 4번 버스 대수를 28대에서 23대로 줄이고, 대형버스(정원 57대)에서 중형버스(정원 45대)로 변경했다. 그러나 4번 노선을 이용하는 승객은 그대로인 탓에 출퇴근 시간 만원 버스가 된 것이다.
실제로 오전 8시20분께 동인천역에서 탑승을 하니 카드를 찍은 후엔 출입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다. 중형버스인 탓에 출구가 좁아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엉켰다. 4번 버스 일부 기사들은 최근 '4번 버스는 왜 지옥 버스가 됐나'며 시 정책을 규탄하는 내용의 스티커를 정류장에 붙이기도 했다.
4번 버스 승객 이승훈(28)씨는 "신포동에서 타 문학동까지 가는데 사람에 치여 가면 아침에 혼이 다 빠진다"며 "배차 간격도 불규칙해 불편한 날도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민원들은 이미 시에 수차례 접수됐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 상황. 시는 최근 난폭운전을 막고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하차벨' 대신 기사님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나오는 '해피버스'(8번, 511번 일부)를 도입했지만 기사들이 체감할 수 있는 근로여건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 관계자는 "차고지를 기점으로 해달라는 민원이 많이 들어오지만 예산문제로 노선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며, 종점마다 컨테이너를 두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4번 버스의 경우 노선이 변경되면서 검토한 후 바꾼 것이며, 무작정 민원을 접수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