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울리 슈틸리케 감독 체재로 '대장정'을 시작한 대표팀은 2차 예선에서 8전 전승에 무실점이라는 빼어난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무2패로 '꼴찌'에 머물렀던 씁쓸한 기억을 한꺼번에 날려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최종예선에 접어들면서 한국 축구의 밑천은 확실하게 드러났다.
2차 예선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0위권의 약체들을 상대로 골감각을 자랑했던 선수들은 최종예선에 접어들자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한국은 최종예선 10경기에서 11골을 넣으면서 경기당 평균 1.1골로 빈약한 득점력에 그쳤다. 그러는 동안 실점은 10골이나 내주며 허술한 뒷문을 드러냈다.
아시아 맹주를 경쟁하던 B조의 일본은 17골을 넣은 가운데 호주와 사우디아라비아도 나란히 16골을 넣으면서 선전한 것과 크게 비교된다.
한국 축구가 원정 월드컵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던 것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이다.
허정무 감독이 이끈 당시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 B조에서 아르헨티나(3승)에 이어 1승1무1패로 16강에 진출하며 원정 월드컵 역대 최고 성적의 기쁨을 맛봤다.
'허정무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세대와 그 뒤를 이은 세대의 조화가 가장 좋았던 시기로 평가된다. '캡틴' 박지성과 차두리, 이영표, 김남일 등 2002년 세대와 박주영(서울), 이청용(크리스털팰리스), 기성용(스완지시티) 등 차세대 스타들이 한참 성장하는 때여서 '신구조화'가 뛰어났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 등 고참급 선수들이 물러나고 이청용, 기성용, 박주영 등이 중심으로 떠오른 2014 브라질 월드컵부터 사실상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손흥민(토트넘)과 홍정호(장쑤 쑤닝), 김영권(광저우 헝다) 등 '홍명보의 아이들'로 가세했지만 2010년 남아공의 위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1무2패라는 참혹한 결과에 그치며 아시아 맹주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2018 러시아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한국 축구는 최종예선 과정에서 사령탑이 교체되는 시련을 겪었다.
대한축구협회도 감독 교체 타이밍의 '골든 타임'을 놓치면서 상황이 더 악화했고, 신태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선수들의 결정력 부족과 조직력 와해는 여전했다.
'예전에 잘했던' 고참들이 가세하면서 대표팀의 위기를 돌파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약효가 없었다. 신 감독 체제에서 2경기 모두 0-0으로 끝났다.
결국, 사령탑보다 선수들의 떨어지는 기량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됐다. 팀 전술이 통하지 않을 때는 개인 전술로 위기를 돌파해야 하지만 태극전사들의 개인기는 상대 수비수를 쉽게 제치지도 못하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종예선에서 드러난 태극전사들의 실력이라면 한국 축구는 또다시 러시아월드컵에서 실패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신태용 감독은 우즈베키스탄전을 마친 뒤 "남은 기간 신태용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와 팬들이 원하는 축구를 하겠다"라고 공언했지만 9개월 앞으로 다가온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 지금 대표팀 선수 이외의 얼굴을 찾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신 감독으로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전술로 대표팀의 색깔을 입혀 월드컵 무대에서 경쟁력이 있는 팀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힘겨운 숙제를 떠안게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