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란 공포·안보 프레임으로
한반도 위험한 시간으로 몰아가
그들이 짜놓은 틀에서 벗어나
우리가 원하는 구도 가동안하면
평화는 결코 가능하지 않아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9일 유엔총회에서 행한 연설은 지금 상황에서 한 국가의 최고 책임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언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합리적 대응이 도박과 겁박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전쟁과 안보 프레임이 너무도 강고하여 이성적인 대응을 말하면서도 행동은 도박과 겁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근본적 결단과 선택은 어떠할까. 그 어떤 경우라도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그것을 천명한 유엔 연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런데 도박과 겁박을 벌이는 자들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이런 행동을 되풀이 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이 두려움과 불안을 이용하여 상황을 조장하고 확대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확대하려는 정략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래서 위험은 전쟁이 아니라 전쟁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있으며, 자신의 이익과 관심사를 극대화하려는 정략적 태도를 감춘 거짓 안보 논의에 휘둘리면서 위험은 더 커지고 있다.
지금 이 프레임을 벗어나려는 결단이 필요하다. 평화가 절실한 만큼 이를 지키기 위한 강인함과 담대함이 있어야 한다. 전쟁과 안보 프레임에 빠져 미국의 겁박에 굴복하고 북한의 도박에 휘둘리면 우리는 영원히 이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지속적으로 불안과 두려움에, 또 그로 인한 반인륜적 상황에 허덕이면서 우리의 운명을 미국과 북한에 맡기게 된다. 심지어 중국과 일본의 눈치까지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계에 이른 자본주의는 전쟁 위협을 통해 세계화한다. 그를 위해 필요하다면 국지전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전쟁은 철저히 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트럼프의 발언이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전쟁과 안보논쟁은 전적으로 이 프레임에 따라 움직인다. 그들은 이 두려움과 위험을 이용하고 확대하면서 그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우리가 두려움에 떠는 동안, 그래서 평화를 말하는 동안 그들은 끊임없이 위협을 변주하며, 다른 한편 거짓 위로와 과장된 안보를 반복한다.
지금 대외적으로 해야 할 일은 그 어느 국가도 최종적으로는 우리의 평화를 위한 세력이 아님을 직시하고, 궁극적 평화를 위한 담대함과 강인함, 그를 위한 평화외교를 확대하는 일이다. 세계적 관점에서 정당하게 주장하는 정의와 평화에의 요구가 그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안보와 군비강화를 외치면서 마치 그것만이 평화를 위하는 길인 듯이 떠드는 비리세력을 처벌하고 단죄해야 한다. 이 전쟁과 안보 프레임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무리들이 연일 안보와 군비강화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이야말로 우리를 보호할 최종 심급인 것처럼 떠들면서 사실은 자신의 기득권을 고수하려 한다. 안보를 외치면서 비리를 감추고, 군비강화를 말하면서 사적 이익과 권력을 확대한다. 보편적 인륜과 정의의 이름으로 이들을 척결하는 길은 평화를 정초하는 전제 조건이 된다.
이들 세력의 숨은 의도를 넘어서고, 그들이 설정한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 평화의 길이 시작된다.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과 북한의 정권 욕구, 나아가 중국의 세계 전략을 단호히 거부하는 담대함과 이를 지켜낼 강인함이 필요하다. 대내외적으로 전쟁과 안보 프레임을 강조하는 그들이 짜놓은 구도를 벗어나, 우리가 원하는 구도와 프레임을 가동하지 않으면 평화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평화를 위한 열정과 순박함으로, 다른 한편 이를 위한 현명함과 지혜로 필요한 세계 구도와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지금 우리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평화를 위한 변혁을 상상하자. 보편적 인륜과 정의는 결코 망상이 아니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