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시민들에게 바꿀 수 없는
사회체계 구조적 의사소통의 장
모든 사람들 자유롭고 평화로운
평등이용 공공공간임에도 불구
때론 독선적이고 폭력이 난무
특정집단 불법 장기점유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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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재 대우재단 이사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탄핵을 몰고 왔던 촛불집회가 열린 곳도, 이에 맞서 탄핵만은 안 된다고 소리를 높인 태극기집회가 열린 곳도 둘 다 광장이라는 이름의 장소였다. 사람들이 그들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할 때면 왜 광장이라는 곳에 모여 집단적으로 소리를 높여 외쳐야만 하는 것일까? 정치학에서 말하는 직접민주주의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고대 그리스에서 행해진 직접민주주의의 현장이 아크로폴리스라는 공공장소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서구의 도시문화를 대표하는 광장이라는 이름의 공공공간을 집단시위와 투쟁의 장소로 이용해오고 있는가? 최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와 민주노조의 천막농성 등 특정집단이 장기적으로 의사표시를 하는 장소가 되어버린 광장이 과연 이런 용도로 계속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농경사회로부터 근대도시사회로 넘어오면서 그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도시생활 중 한 가지가 바로 광장과 공원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광장은 앞서 말했듯이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로마의 포럼, 중세와 르네상스의 광장을 거치면서 유럽 도시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 왔다. 반면 공원은 과거 귀족들이 소유하고 있던 대규모 장원이 민주화의 거센 물결에 떠밀려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바뀌어 진 것이기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문화권의 도시에서는 광장이나 공원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광장이나 공원과 같은 도시의 공공공간은 오랜 역사 속에서 생활화된 광장도 아니었고 종교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징공간도 아니었으며, 목숨을 걸고 투쟁한 전리품으로서의 공원도 아닌, 어느 날 갑자기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그 소중함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우리에게도 정치적 의미에서 서구의 광장과 같은 기능을 담는 곳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왕의 실정을 집단적으로 토로하거나 백성의 억울함을 호소하던 곳은 궁궐 앞이나 관청사 앞마당이었고, 농민들이 봉기한 동학혁명이나 독립을 외치던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도 장터나 길거리였음을 볼 때, 관청 앞마당이나 시골의 장터가 서구도시의 광장과 같은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서구문화에서는 바로크시대를 거치면서 도시공간은 상징화되고 나치즘과 파시즘이 대두되던 전체주의와 공산사회주의의 소련을 비롯한 전제주의 국가들에서 대규모 광장이 출현하면서 광장의 용도는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이나 북경의 천안문광장, 파시스트의 산지 밀라노의 성 바빌라광장, 뉘른베르그의 군사훈련장, 북한의 김일성광장과 서울의 여의도광장도 거의 같은 목적과 용도로 만들어진 광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전제주의국가의 독재자들은 인간을 압도하는 스케일의 대규모광장을 만들어 막강한 군대의 위용을 자랑하는 퍼레이드를 펼침으로써 절대권력을 과시하는 일에 이용하곤 했다. 그런가하면 프라하의 벤체슬라브 광장과 모스크바의 마네츠광장, 그리고 천안문광장은 공산주의에 항거한 군중의 시위로 민주화를 부르짖은 장소가 되기도 했다.

광장이라는 공공공간은 도시 속에서 자유와 평등과 평화라는 가장 소중한 인간적 가치가 구현되어야 하는 곳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하버마스에 의하면 민주적 공간으로서의 광장은 도시민들에게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활세계의 구체적 표현이자 사회체계 속에서 작동되는 구조적 의사소통의 장이라 한다. 광장은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평등하게 이용되어야 하는 공공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전제적이며 독선적이고 폭력이 난무하는 곳으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광장과 같은 도시의 공공공간들이 사회체제 속에서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고 내재된 가치를 드러내는 장소로서의 의미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이중성을 띠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선진화되고 민주화된 광장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특정집단의 장기적 점유라는 불법적 행태가 사라져야 하는 것이 우선과제가 아닌가 싶다.

/양윤재 대우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