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한 미군 철수의 끔찍한 교훈은 300여만 명의 사상자를 낸 6·25 한국전쟁이 말해준다. 1950년 6월 25일~53년 7월 27일의 그 동족상잔 전쟁이 종전도 아닌 휴전으로 포성과 초연(硝煙)이 멎고 걷힌 지 64년. 그간 북한이 어찌했던가. 크고 작은 도발을 육상 해상 공중에서 수도 없이 해왔다. 그러나 전면전을 재개하지 못한 건 전적으로 주한 미국 때문이었다. 일제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8일부터 남한에 주둔한 미군이 철수한 건 49년 6월로 4년여 만이었다. 1950년 1월 발효된 이른바 '애치슨라인(Acheson line)'으로 미국의 방위선에서 한국이 제외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주한 미군이 철수한 지 불과 1년 만에 북한이 전면남침을 감행했고 그게 바로 6·25라는 전쟁이었다. 그 때 미군은 한국 방어를 위해 16개 유엔군 대표로 참전, 3만6천574명이나 전사하면서 자유 대한을 구출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런 미군이 다시 철수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 미군이 주둔해 있는 경우야 인계철선(引繼鐵線→trip wires) 역할로 침략 방어에 자동 개입이 보장되지만 일단 철수했다 하면 사정은 사뭇 달라진다. 한미동맹이 그대로 유지된다 해도 미군 자동파견 개입은 불확실해지고 미국 의회 승인 과정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처절한 역사 교훈은 베트남의 경우다. 자유민주 진영인 남베트남으로부터 미군이 철수한 건 1973년 3월이었고 그 2년 만에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에 의해 적화통일의 비극을 고스란히 당했던 거다. 당시 남베트남은 경제와 군사력이 우위였다. 그런데도 1973년 그 해 체결된 '베트남 평화협정'을 근거로 북측이 미군 철수와 포로 교환, 현 상태로의 정전을 집요하게 주장했고 남측이 그대로 응했던 결과가 그랬다. 그게 바로 역사의 교훈이고 한국의 반면교사가 아니고 뭔가.
'북핵을 용인해야' '한미동맹이 깨진다 해도' 따위 발언이 거침없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서울 광화문광장 미국대사관 앞에선 '주한 미군 물러가라'는 시위까지 벌어지는 판이다. '전시작전권 환수가 시급하다'고도 했다. 다음 발언 수위는 어떨까. '김정은 체제로 흡수 통일된다 해도 전쟁은 안 된다'가 아닐까.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