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불하 시도 6차례 공매 유찰
1957년 계좌수 제한철폐후 낙찰
1945년 8·15 해방과 함께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으나 남북분단으로 이북에 있던 각 은행의 지점과 자산들은 소련 군정하에서 새로 설립된 북조선중앙은행에 통합됐다.
남한에는 일본계 금융기관인 조선은행, 식산은행, 저축은행, 신탁회사, 무진회사, 금융조합연합회 등과 민족계 은행인 조흥은행과 상업은행이 있었다.
그러나 이 금융기관들은 과거 수많은 일본인 기업체들에 빌려줬던 막대한 규모의 대출금 전액이 회수 불가의 부실채권화 됐을 뿐 아니라 일본인 소유업체들이 발행한 회사채와 주식 또한 휴지 조각이 돼 빈껍데기 그 자체였다.
1946년 미군정청은 특수은행인 저축은행을 일반은행으로 전환하고, 신탁회사를 신탁은행으로, 무진회사를 상호은행으로 각각 상호를 변경했다.
1947년에는 은행지점 총수 222곳의 30%와 금융조합 401곳의 60%를 적자경영을 이유로 폐쇄했다.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각 은행 주식은 전부 미군정에 환수되었다가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국고(國庫)로 귀속되었는데 이것이 소위 귀속주(歸屬株)다.
이승만 대통령은 오랜 기간 동안 미국에 체류하면서 시장경제체제의 우수성을 몸소 체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휴전 이후 일련의 경제정책은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전쟁의 상처도 회복되고 전후 부흥정책에 힘입어 순탄한 경제성장을 지속하자 1950년 벽두부터 정부 보유의 은행주(銀行株) 민간불하를 단행했다.
시중은행들의 내부사정 때문이기도 했는데, 시중은행들은 해방 전 일본기업체들에 제공한 대출금 25억환(현재 가치 약 22억원)이 전부 부실채권화한 것이다.
또한 해방으로 인해 약 291억환에 달하는 일본인 소유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 및 주식 보유로부터 발생하는 이자수입마저 끊어진 터에 해방 후 저축률 둔화와 악성 인플레이션 등까지 겹쳐 은행들이 파국상황이었던 것이다.
1950년 5월 5일 정부는 한국은행법과 은행법을 제정해서 금융자율화와 조흥은행, 상업은행, 상공은행, 저축은행, 신탁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의 정부귀속주 민간불하를 결정했다. 예금자보호는 물론 은행의 자주화 및 건전화란 신은행법의 기본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귀속주식의 처분에 따르는 기술상의 애로와 증자, 자산재평가문제 등으로 은행법은 공포 즉시 시행되지 못했다. 더구나 시중은행을 민간에 불하할 경우 정부의 국민경제 장악력 약화 및 재벌들의 금융지배 우려 때문에 시중은행 불하건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그러나 1954년 6월 이중재(李重宰)와 김영찬(金永燦)이 각각 재무부장관과 차관이 되면서 지지부진했던 시중은행 민간 불하 사업이 본격화됐다. 민영화 작업 추진과정에서 정부는 자본 및 경영상태가 가장 취약한 신탁은행과 상공은행을 합병해서 1954년 10월 1일부로 흥업은행(한일은행의 전신)을 설립했다.
이로써 당시의 시중은행은 조흥은행, 상업은행, 저축은행, 흥업은행 등 4개로 축소되었다.
정부는 재무부와 관재청,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은행주불하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1954년 10월 14일에 은행 귀속주 불하 요강을 확정했는데 주요 내용은 △연고 및 우선권을 배제하기 위한 공매방식에 의한 처리 △독과점방지를 위해 불하 단위주 수를 일정 계좌 수로 분할하여 응찰 △불하 대금의 일시지급 △낙찰액은 정부 사정가격 이상으로 한다 △2년간 명의서환(名義書換)을 금지한다 등이었다.
1954년부터 추진된 귀속주의 공매입찰은 무려 여섯 차례나 유찰되었다. 시중은행 운영의 민주화를 목적으로 1인당 입찰 계좌 수 및 양도를 제한함에 따른 대자본들의 참여가 원천 봉쇄된 때문이었다.
이후 정부는 귀속주 불하 작업을 조속히 매듭짓고자 소수지배가 되더라도 입찰 계좌 수 제한을 철폐하기로 방침을 변경해 1957년 8월에 제7차 공매에 들었다. 삼성, 삼호, 개풍, 조선제분 등이 불하 경쟁에 참여했다.
정재호는 제일은행의 귀속주식을 불하받아 실질소유주로 등장하면서 은행융자 규모 면에서 약 84억7천만환을 기록하는 등 국내재벌 중 단연 1위를 기록했다. 시중은행 중 정치권에 가장 가까웠던 것은 정치재벌 정재호가 지배하는 제일은행이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사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